소나무재선충

by 비움과 채움

양양으로 향하는 출장길이었다.

시원하게 뚫린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조금 내렸다.

겨울 끝자락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봄 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아직 완전히 푸르지는 않았지만,

메마른 숲 사이사이로 연둣빛 기운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이상했다.


산 중턱마다 군데군데

붉게 말라버린 나무들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겨울의 흔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그 붉은 나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한 능선이 통째로 말라 있었고,

어떤 산은 반쯤이 죽은 숲처럼 보였다.


가까이 보니 모두 침엽수들이었다.

소나무들 사이로 잣나무도 섞여 있었다.

푸른 숲 사이에 서 있는 갈색의 나무들은

살아 있는 숲이 아니라

이미 멈춰버린 숲의 시체처럼 보였다.


주범은 소나무재선충.


길이 1mm 남짓한 작은 선충이

나무속으로 들어가 수분과 양분이 흐르는 길을 막아

결국 나무를 말려 죽인다고 하는,

한 번 감염되면 거의 100% 고사.

치료도 사실상 불가능한

그래서 사람들은 이 병을 "소나무 에이즈"라고 부른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가

산 하나를 통째로 죽이고 있다니?


예전에는 산이 푸르다는 말이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산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이 병이 왜 이렇게 퍼졌을까.


지구 온난화로 매개충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져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가뭄과 폭염은 나무의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고

약해진 숲은 병에 무너진다고 하니

환경의 변화가 무섭다.


결국

숲이 아픈 이유는

자연의 병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환경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소나무는 한국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던 나무.

불변과 절개를 상징하던 나무.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의미하던 나무.


그 소나무들이

지금은 산마다 말라죽어 서 있다.


강인함의 상징이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있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숲은 이미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었다.

불타버린 숲과 다를 바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말라버린 소나무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산 전체가 병들어 있는데

손에 쥔 처방전이 없는 현실.


베어내고, 태우고, 확산을 막는 것 외에는

마땅한 치료가 없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죽어가는 숲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봄이 오고 있는데

숲은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둣빛이 올라오는 사이로

붉게 죽어 있는 소나무들이

마치 마지막 신호처럼 서 있었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는

푸른 산보다

죽은 산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강인함을 상징하던 소나무가

지금은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미미하다니?


양양으로 향하는 길,

봄 공기는 분명 따뜻했지만

창밖의 숲은

어딘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살아 있는 계절 속에서

죽어가는 숲을 바라보아야 하는

마음 한편이 내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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