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주변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기를 즐겨했던 나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무리 중에
유독 조숙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조숙희'라는 이름 때문에라도
절대 잊지 못할 그 아이-
그 친구는 주변의 친한 친구들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따돌리는 재주가 있었는데
마치 순번을 정해놓은 듯
차례가 돌아가다 보니
예외 없이 나도 걸려든 적이 있다
물론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된
오늘날의 심각한 집단 따돌림 축에는
끼기 어려운 수준이겠지만
일주일 가량은 철저히 소외되어야 하는,
물리적 폭력은 없으나
이 또한 또래들 간의 정서적 폭력,
학대 행위임은 분명했다
그 기간에 피해 대상을 도우려는 이는
같이 매장되는 묵시적 룰이 무서워
주변에는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되고-
한 명의 독재자와
그를 방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고민을 한 경험이었다
잘잘못을 따지고
그름을 지적하며
옳음을 추구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표적이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개인이 십자포화를 감당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고 비난부터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립' '객관적 입장' '평안'이라는 말로
비겁을 포장하고
무위에 그치기보다는
힘없는 개개인의 연대로
강자의 폭압이 큰 잘못임을 공표하고,
보복과 회피가 아닌
수치심을 각성시키고
화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주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일본의 이유 있는 혐한 열풍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고도
장기 불황의 늪을 탈출하지 못하는
자국의 경제 문제와 더불어
자기네가 식민지로 삼았던
한국의 선전에서 오는
불안과 열등감의 발로라는
어느 일본 교수의 발언에
상당 부분 수긍하게 된다
식민사관에서 바라볼 때
우리 민족은 우매하기 때문에
일본보다 뒤처지는 것이 늘 당연하고
인권은 모종의 수단이자 술책으로 활용될 때나 거론될 뿐
묵살당해 마땅한 것이니-
어린 시절 내 친구가
주변 이들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쾌락에 눈 떴던 이유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눈에 띄게 왜소한 체격,
사춘기 무렵 남자아이들에게
관심 한번 받기 어려웠던 외모의 문제가
자격지심으로 응축되어 발산된
배경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따돌림 권한'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우연히 찾고
전횡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자
점차적으로 무뎌진 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부디 그 친구가
아직도 약육강식의 논리에 사로잡혀
권력의 맛에 취해있지 않길 바라보면서
문제아를 단죄하는데 그치는 것은
그야말로 미봉책-
문제아를 양산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의 역사든
민족의 역사든
자격지심, 경멸, 차별로부터의 해방이
평화를 수호하는 길이고
더불어 사는 길이라는데
나로선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