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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Nov 04. 2016

자살 아닌 자생을 위하여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매 순간
생과 사의 무게를 놓고
저울질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
더 이상의 희망과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절망 앞에 무릎을 꿇게 되자
재고의 여지없이 고층 빌딩 옥상에 성큼성큼 올라섰고

 극약도 남몰래 품고 살았다

유격 훈련 시 동기생들이 멈칫거리고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
난 활강하는 맹금처럼
11M 모형탑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숨에 몸을 날렸다
 
자살을 목전에 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사람에게
그까짓 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가소로운 일-

모진 시련 앞에서도 학창 시절 내내

 자기 효능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오던 내가
사관학교 2학년 때부터 졸업식(임관식)까지
줄곧 자살사고로 위태로운 생활을 하기 시작한 연유를
따지고 또 따져보았다

짐작건데

그런 마음의 병이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심연의 공포가
늦게나마 실체를 분석하도록 추동한 건 아닐까



자유 의지는 박탈되었는데

무한 경쟁과 감시를 해야 하고
모순과 상처는 가린 채 실상과는 다른
늘 근사하고 품위 있는 모습만을 강요받는 것이
나로선 굉장한 인격적 모독이자

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큰 이유였다

그래서 몇 년만 버티자고

아무리 자기 주문을 외워봐도
그 효력은 기껏해야 1년 남짓
 
인내심과 극기를 과신한 스스로를
얼마나 원망하며 무수한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큰 갈피를 잘못 잡아

 이렇게까지 망가졌는데
더 이상 무슨 수를 써도 개선 혹은 복원되지 않으리란 생각과 함께
 더 비참해지기 전,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끓어 올랐다



이런 삶은 원치 않아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한 몸 깔끔하게 정리하면

이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은 내 흔적은

말끔히 사라지는 거야



                                                                                                     

이건 소름 끼치도록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렇게 생의 의미를 찾고

담담히 그 당시를 이야기하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내 판단을 반박하자면


 인간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예측할 수 없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예측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잠재력이 아니라
이미 쓰고 있는,
한참 발휘하고 있는 능력이 아닐까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언제까지고 구질구질한 현재와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다 거기서 거기라고 판단하는 건

어떻게든 '자살'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급조한 추론일 뿐이다

내 삶을 포기하는 건
리셋이 아닌
 종말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니까
내 목숨 또한 오롯이 내 것이고
함부로 하든 말든 누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내 육신 하나 세상에서 없앤들 무엇 하나,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고칠 길 없는 영혼의 상처를
떠안기고 도망가는 꼴인데...

그러니 세상에 티끌만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고 싶어서
자살을 결심한다는 것도
사실상 어불성설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해보려 해도
전제부터 틀린 생각인 것이다

이젠 죽음 자체가 아닌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농담하듯 죽음을 넘보던 과거의 내가
가장 무서워졌다

우울증의 대표 증상은 무기력감이라고 생각했는데
겪고 보니 절망에 대한 분노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힘내라"


"살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니"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환경 탓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온 마음을 다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시간을
고통 속에서 숙고하셨을 테지만
당신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제 경험상 우울증이 자살 기도로 이어지는 건
심하게 훼손된 자존감,
그런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처럼
스스로를 공격한 결과라고 판단하기에
상처가 되는 '문제'와

상처받지 말아야 할 소중한 '존재'를
철저히 분리시켜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절망해 마땅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살은 절대 정당화되지 못합니다

자살로 내몰린 당신은
피해자입니다.

절망감을 느끼게 한 사람/사회로부터
희망을 얻어내는 그 날까지
즉, 피해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고 느낄 그 날까지

부디 버텨주세요


 '자살자'라는 낙인만 덩그렇게 남겨놓고 떠나
당신의 인생 역정이 모욕 당하는 일이

결단코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제넘은 조언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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