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극빈층으로 전락해서
이곳저곳 전전하던 그 시기-
식구들의 고통분담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열넷, 열다섯에 불과한 내 나이에는
감당하기 벅찬 압박으로 다가왔다
단지 부모님 두 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이 무너졌을 뿐인데
당시의 난 기필코
내 힘으로 다 복원해내겠노라고,
부모님의 노력과 정직이 욕되지 않게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불세출의 알파걸이 되겠노라고
굳은 결심을 했더랬다
알파걸이 되겠다 다짐한 데는 물론
아빠와의 관계 설정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자수성가한 사업가 아빠의 강한 자존심과
그런 아빠에게 엘리트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한
인정 욕구가 만들어낸 합작품
크면서 내 성격과 능력의 한계를 느꼈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면서
한때는 흔히 말하는 '취집'을
바라던 시절도 있었다
내게도 한 번은
재력가 집안에서 단박에 맘에 든다고
자기네 가산을 맡아 관리해달라며
혼사가 급물살을 탈 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깨달았다
백마 탄 왕자가 홀연히 나타나
억만금을 안겨주며 호의호식하라고 해도
내가 거절한 인간이란 것을-
거저 얻은 부를
속 편하게 누릴만한 위인이 못된다는 것을-
일장춘몽에서 깨어나는 순간
결코 내 삶의 주인으로
떳떳하게 살아나갈 순 없으리란 것을-
그렇게 무임승차했다간
영혼을 좀먹겠다는 판단 끝에
그깟 돈에 나를 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악마의 유혹을 뿌리쳤다
또래 커플들보다 초라한 시작이지만
가족들 어느 쪽에도 손 벌리지 않고
우리 둘만의 힘으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새내기 부부로서 시작한 새 삶을
누군가에게 저당 잡히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양가 어른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곧
삶의 일부를 저당 잡히는 걸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린 그런 위험으로부턴
자유롭다는 사실
NO FREE LUNCH
곱씹을수록 느끼는 바가 많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더 이상 여성한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며
사회, 경제적 신분 상승이라는
기대 심리가 반영되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
그 흔한 드라마 소재로도 쓰기 힘든
진부하기 그지없는,
전혀 현실성 없는 판타지-
누군가의 배경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 사람을 욕하기에 앞서
로또와도 같은 그런 기회를 부러워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당연시하는 문화와
우러러보는 의식부터
바꾸고 성숙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게다가
외모지상주의와 사회적 성차별 문제부터
해결할 때라야
비로소 동등한 사회적 지위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남자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여자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불상사도
현저히 줄어들지 않을까
남녀 편 가르기가 아닌
인권에 대해 집중해야 할 시점-
알파걸, 슈퍼우먼을
이 시대의 지향해야 할 인간상 인양 광고하고
계속해서 양산해내는 사회 시스템도
점점 더 치열한 삶으로 내몰아
개인의 성취에만 몰두하고 만족하도록 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덮고자 하는
대자본과 권력가들의 술수라고 보는 건
나만의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유독 '나 홀로' 문화를 독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마당인데-
나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도
내 노력보단 남의 덕을 보려는 삶도
하나같이 알맹이 없는
쭉정이나 진배없는 삶이다
한 때의 내 모습을 반성하며
신데렐라와 알파걸 콤플렉스로부터 탈출해
이렇게 떠들 수 있는 지금에 자족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굳건하다
주체적인 삶 속에는
의외로 후회와 아쉬움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