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차의 숙명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이 노래를 알고 지낸 지가 20년도 넘었지만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읊조려왔음을 실감하면서
요즘 적잖이 놀라는 중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렌즈와 문법으로
세상과 타인을 살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 날선 냉철함이
나에게도 적용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게도
우리 자신을 면밀히 살피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내가 처한 현 상황에서의 객관적인 판단이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
가령, 아무런 지지 기반 없이 나 홀로 고립이 되어있는 상황이거나
내가 당장 기초적인 생존권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치자.
당장 살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칠 때는
내 몸 곳곳에 어떤 상처가 생기는지,
얼마나 통증이 심한지는
하등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엄살을 피웠다간 내 목숨줄이 끊어지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쉴 수 있고
햇빛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동안 억눌러왔던 묵은 통증과 감정들이 우후죽순 떨치고 일어난다.
가장 행복한 순간 우리는 바쁘거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웃지 못하고
가장 힘든 순간 우리는 돌파하는 데만 전심전력을 다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도 슬퍼할 겨를도 없다.
늘 빛과 어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때 선명하게 형체가 드러나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못마땅하다고 답답해하지 말자.
시간차 때문에 인생의 절정에서 희열을 느껴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절망으로 단번에 꺾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법이니-
그리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들은 내 인식과 시야의 틀에 갇힌 것일 뿐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 둘 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눈을 감은 채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10년이 지나있을 땐 10년 전 오늘을
20년이 지나있을 땐 또 10년 전, 20년 전을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노라고 할테지.
권태롭고
답답하고
지치고
짜증이 솟구치는 나날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