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는 어릴 때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늘 할머니 눈 밖에 난 존재였다. 며느리가 주희를 낳았을 때 부랴부랴 달려온 당신의 아들에게 "딸이니까, 아범은 돌아가서 일해라. "했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할아버지가 작고하신 이후 할머니의 아들 딸들이 방문하는 일은 연례행사처럼 뜸했고 그런 할머니의 사정이 너무 딱해 보여서 주희는 일부러 더 찾아가 말벗이 되어 드리고 전신 안마까지 해드리고 왔다. 할머니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기는 사람이라고는 자식은 물론 손주들 사이에서도 주희가 봤을 땐 단 한 명도 없는 듯 해서 가슴이 아려왔다.
할머니가 과거를 회상하며 잠시나마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주희는 셋째 아들(주희 父) 이야기 좀 더 해달라고 괜한 응석까지 부리곤 했다.
주희가 11살 때, 부모님은 안 계시고 생선 장사를 하시는 할머님과 단둘이 함께 산다는 짝꿍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그 아이는 언제 세탁을 했는지 모를 꾀죄죄한 옷차림에 생선 냄새를 늘 달고 다녔지만 그 아이의 시원하고 해사한 웃음에는 주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티 나지 않게 일부러 연필과 지우개를 넉넉하게 챙겨 다니면서 소소한 간식과 함께 무심히 툭 건네곤 했다.
또 언젠가 짓궂은 남학생들이 다리가 불편한 친구 신발 가방을 빼앗아 휘두르면서 괴롭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주희는 여느 여자 아이들과는 참 많이 달랐다.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어 다시는 안 괴롭히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내고야 겨우 잡았던 멱살을 놓아준 적도 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했던 주희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신체조건, 집안의 경제력, 성적 따위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오로지 심성이 선한 아이들하고만 친구로 지내다 보니 친한 친구들의 성적은 상위권이 아니었다.
주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의 공부법을 아낌없이 풀었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랬더니 절친의 기말고사 시험 결과 주요 과목 평균이 10점 이상 껑충 뛰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주희는 그냥 친구가 기뻐해서 자기 일처럼 좋았을 뿐 그걸로 생색을 내고 싶진 않았다.
주희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부모님이 고통받는 장면을 낱낱이 숨죽이고 지켜봐야 했던 순간이었다.
한때의 동업자가 배신자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모함을 하고 세력을 형성해서 아버지한테 몰려와 무력 행사를 하기 일쑤. 아버지는 뼈까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셨고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사람들로 인해 심장병까지 얻고 말았다.
집안에는 웃음기라고는 한 방울 흔적도 없이 싹 빠졌고 그로부터 10년 이상을 식구들 모두 숨만 붙은 산송장처럼 살아갔다. 주희는 부모님이 혹여 나쁜 마음을 먹으실까 봐 자기 하나라도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이상 더 열심히 할 순 없겠다 싶을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돈을 벌며 살아갔다.
직장에서는 동성의 선배들이 툭하면 후배들의 뒷담화를 일삼아하며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희는 '나는 절대 내 얼굴에 침 뱉는 저런 행동 하지 말아야지...' 굳은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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