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세월 자학을 일삼았고
심지어 살인(self) 미수까지 저지른
중범죄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체 세상이, 세상 사람들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나... "
늘 답답하고 억울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그 괴로운 현실은
곧 내가 만든 것임을
10년 전쯤 깨닫게 되었다.
"네가 하긴 뭘 해? 퍽이나 잘 하겠다. "
"이 정도도 모르는 걸 보니 넌 멍청이야. "
듣자마자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악담 따윈
소화시킬 생각을 하질 말고
곧바로 배설을 해버렸어야 했는데
그런 판단을 하기엔
턱없이 어렸던 나는
안타깝게도 그걸 속으로 삭히고 또 삭혔다.
그런 연유로
나는 자기 비하가 일상이었다.
안 그래도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조심스러웠던 아이였는데
어렸을 때 들었던 말들은
내 안에 아예 뿌리를 박고
수십 년간 주인 행세를 해왔다.
그리고 내 입은 닫혀 버렸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른으로 자랐고
절대적으로 나의 만족은
뒷전에 두고 살아왔다.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내몰리면
괴로워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이게 익숙하다는 느낌에
저항 없이 주저앉아 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시궁창 같은 현실은
진전이 없었다.
나는 늘 억울했고
그러면서도 그 고통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견뎌내기 급급했다.
인생의 절반을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로 점철된 시간으로
꽉 채운 탓일까.
부정적 감정의 장 체험이 모두 끝나서인지
이젠 긍정적인 감정의 장으로 넘어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내가 빨리 깨달았다면
고단하고 지난했던 수업의 과정이
단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통의 심연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원망과 비탄,
절망과 후회, 증오, 자기혐오, 질책을 경험하면서
어두운 감정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인지와 수용을 하면서
흘려보내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값진 교훈인지...
나는 마흔이 넘어서
새로 태어났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어떤 감정을 켜켜이 쌓아왔는지에 따라
나를 둘러싼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활자를 통해서
많이 접해오긴 했어도
머리로만 이해하는 데 그쳤었는데
감각 세포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느끼는 실질적인 체험은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강력한 전율을 안겨주었다.
나는 왜 특별한 재능이 없을까
뚜렷한 목표가 없을까...
이 생각에 매몰되어
참 많은 시간 방황도 했었지만
이젠 그런 고민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의 평안을 찾으니
내가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더 선명해졌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