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자화상
내 상처를 직시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하자니
또다시 과거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게 된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우리 부모님은 가까운 지인, 형제한테
뒤통수를 맞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있을 때도
자식한테만은 끝내 치부를 감추려고 하신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고
최소한의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하신 듯 하다
내 기억으론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인 것 같다
변호사, 지역 공직자들까지 돈에 매수당해
온갖 부정과 배신을 일삼다보니
마땅히 받아야 할 정당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신세-
부모님이 무자비한 폭력에 짓밟히는
그 비참한 현장을
나는 숨어 울면서 목도해야만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난 내 몸 값, 내 목숨 값은 얼마나 될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아무리 어려도 중학생이면
어느정도 지각이 있고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나이지만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올바른 처세에 대해 생각하기란
정말 꿈 같은 소리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일단, 오랜 세월 믿고 지낸 사람들의
배신을 지켜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았고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다른 식구들 보호하느라
넘을 수 없는 벽을 쌓은 것이
어떠한 고난과 역경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느라,
그리고 가족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긴 했나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그저 바라보면~♪
지금도 몸서리 치게 싫은 CM송)
그게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자리잡을 줄 몰랐는데
성인이 되고보니
나보다 한 살이라도 연장자를 대할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어려워한다
어른들의 의중은
말 하지 않아도 알아채야하는 것
나의 감정 따윈 대수롭지 않은 것,
드러내선 안되는 것이라
암묵적으로 강요받은 경험이 빚어낸
결과는 아니었을까
어린 날의 트라우마로 인한
'어른 기피증'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군대 시절 야심으로 똘똘 뭉친
독기어린 여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질려버린 탓에
그래서 여자를 더 무서워하는 건 아닐까
아직 내 머리로는
이 병적인 증상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서른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를 먹고서도
어른 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 나이가 지긋해진다고 해서
증세가 나아질 수 있을까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성찰하며
불합리에 당당히 맞서서 살다보면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이 어른 기피, 공포증도
잠깐의 난치병이었다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제발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