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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너 Jul 16. 2021

살아낸다는 것.

도덕 시간

 도덕 시간이었다. 다른 수업은 날로 먹어도 이 과목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내 직업윤리의 마지노선 같은 과목의 수업이었다. 시나브로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은, 교사가 되기 전 품었던 의지를 묻어둔 교과.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랄지, 옳은 것을 선택하는 힘이랄지, 그 삶의 도덕적 가치랄지 등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이 시간만 되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굳이 교실 한중간으로 나가 과하게 굴었다. 



 앞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고 정수리가 벗겨진 정장 차림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남자는 멀리서 봐도 검버섯이 얼굴 곳곳에 피어 있었다. 얇고 하얀 피부마저 탄력을 잃어 생기가 없었다. 그 남자는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해왔다. 그것도 아주 활기차게. 그치만 어쩐지 쥐어짜낸듯한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아이고~ 선생님. 저는 장애인 재단 oo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이고 얼결에 인사를 했다. 순식간에 그 남자에게로 주의가 쏠렸다. 누구시냐고 묻기도 전에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갱지를 한 장 건네며 자신은 장애인과 관련된 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금은 장애인 단체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학생들이 구입하지 않아도 좋으니 판매 안내장을 나누어주기만 할 수 있느냐는 요청에 덧붙여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보이게끔 가정통신문과 같은 재질의 갱지로 만든 판촉물이었다. 


 ‘그 사람들 나한테도 전화해서 얼마나 살갑게 인사하는데. 다 장애인 팔아서 장사하는 사람들이에요. 학교 돌면 수당 나와서 그래. 책 재질도 안 좋아.’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교감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냥 가시라고, 수업 시간에 이렇게 함부로 찾아오시면 안된다고 말하려 했는데. 


 아버지뻘 되는 연배로 나같은 젊은 선생에게 허리를 굽히고 문전박대를 당해도 ‘다시 찾아뵙겠다’며 속 없어 보이는 웃음을 내보일, 수치나 모멸감을 감내한지 오래돼 보이는 태도가 눈에 걸렸다. 학교에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찾아들어 비교적 젊은 선생님들의 반을 살피고, 문을 열기 전에 숨을 크게 내쉰다. 굳게 닫혀있던 입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기꺼이 말아 올릴 것이다. 남자의 닳아서 반질거리는 정장이랄지 유달리 얇아보이는 피부랄지 갱지를 쥐고 떠는 손도 판매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내보였을 절박함이었다.


 하여 나는 가만히 남자를 응시하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잠시 비켜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랄지, 옳은 것을 선택하는 힘이랄지, 그 삶의 도덕적 가치랄지 등을 전한다고 열을 내던 젊은 교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활기를 잃었다. 마치 패배한 전쟁의 장수 같았다. 전쟁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 불시에 찾아드는 생의 감각에 사기를 잃고 어깨를 늘어뜨리는 것처럼.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이내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은 빨리 시작된 쉬는 시간에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


+)

 자리를 내어드린 벌로 저는 교감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ㅎㅎ 

원래 그러면 안됐던 게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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