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하는 풍경
세시 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다. 노란 버스 안에 여리고 말랑한 것들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배달된다. 5, 6년의 인생사에도 매일 할 일이란 게 있어 나름의 과업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꼭 노란 보자기에 싸인 병아리들 같다.
겉에서 바라보면 까만 머리들만 창문에 불쑥 올라와 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키가 의자에 앉으니 그보다 더 작아지는 것일 테다. 귀여운 것도 하루 이틀이련만 좀처럼 질리지 않아 매일 가슴께가 간지럽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입을 벌리고 잠에서 깨지 못하는 아이부터 엄마!! 하고 환하게 팔을 벌리며 뛰어내리는 아이까지. 이 어린것들의 생동감은 흐린 날이 없다.
새로울 것이 없어 곰팡내가 나는 낡은 어른의 일상에도, 활기찬 생명들이 아파트 마당을 뒤덮는 순간들은 찾아온다.
해서 무구한 눈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어떻게도 그렇게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것이냐고, 그 눈들이 나에게 물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한 듯이.
그 간극이 아득해 차라리 웃음이 나왔다.
선명한 색감을 지닌 것들은 세상을 탐험하기를 그치지 않고, 지구의 새롭지 않은 시간들에 자신들의 천진함을 덧입힌다. 하여 다시 이 땅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구슬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는 채로.
비 소식에 밖으로 나온 달팽이를 바라보는 설렘, 뱅글뱅글 돌아가는 기구에 매달려 자신의 힘을 가늠하는 성장, 이를 모를 나비와 꽃들이 보내는 유혹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수함들..
그러니 지구도 아이들이 기꺼울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시간조차도 아이들에게는 흔쾌하여 느리게 느리게 흘러주는 것이다. 어린 생명들에게 그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한해 보이는 하루하루를 아이들의 앞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으로.
자전거와 그네와 풀과 곤충들을, 바다와 깊은 산과 내리쬐는 태양을. 그 모든 것을 겪어내라는 듯이.
오늘도 딸아이를 마중하러 아파트 마당으로 나간다.
시간이 아이 앞에 내려놓은 보따리를 딸과 함께 조금씩 풀어가는 시절이다. 부디 아이의 생기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성장하여 나가는 매 순간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경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