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 매일, 조금씩, 산타는 심정으로 읽어내고는 결국 마음이 녹아내린 책 하나가 있습니다.
생긴 건 좀 어마무시해요. 두께도 두껍고요, 글씨도 무척 작습니다. 논증의 전개가 마치 라잌 논문의 그것과 같아요.
어떤 식이냐면.
그 시대에 자랐을 야생 먹거리들을 세세하게 분류하고 각각의 종자가 왜 살아남지 못했는지 혹은 어떻게 선택되어 작물화 과정을 거쳤는지를 종자의 특성, 기후, 유전적 변이 등등을 나열해 하. 나. 하. 나. 따지고 드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음, 그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집요함이 환장하는 수준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만 그런 게 아닙니다. 대륙별 가축화 가능한 동물의 수부터 필요한 도구, 부족 형태, 지형에 따른 문물 교환 경로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모든 것과 엮어 세세하게 (아이 선생님 이러실 필요까지 없으세요..) 설명해 줍니다.
잠깐,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 오타쿠에 관한 고찰이 좀 필요해요.
오타쿠들이 왜 오타쿠냐하면요. 일반인, 소위 머글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같은 작품을 봐도 ‘와 재밌다, 진짜 괜찮았어.‘하는 수준에서 감상을 마무리하고 말거든요. 그 감상이란 것도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다 날아가죠.
반면 오타쿠들은 작품을 보고 난 후부터를 감상의 또다른 시작점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식이예요.
우선 작품을 초벌(?) 감상합니다. 일단 가볍게 한 번 훑는 식으로요. 그 후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이 때부터는 작품 전체를 나노 단위로 곱씹으며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작가도 그만큼은 안 했을 세세한 캐릭터 분석 및 장면 분해에 돌입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도 껌은 그렇게 안 씹겠다 싶게 오래도록 물고 늘어지다가 다시 가슴이 벅차 오는 어떤 지점에서 작품을 재감상하죠.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모든 과정을 24325번 반복,
하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이제 작품과 자신이 한 몸이 되는 일종의 작아일치(..)의 경지에 오릅니다. 과몰입의 대가들이죠.
왜 갑자기 총, 균, 쇠 이야기를 하다 오타쿠 이야기를 하냐면.
이 작가가 이 분야(인류사)에 있어 오타쿠 중 오타쿠. 소위 씹덕후가 아닌가ㅋㅋㅋㅋㅋ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정도의 논리적 완결성과 허점을 보완하려는 논증들, a부터 z까지 모든 예시를 줄줄 나열하는 수다는 웬만큼 내공 있는 오타쿠 아니면 보이기 힘든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걸 이 분이 해내시고요. 그 오타쿠적 씹덕력이 모아져 세상으로 나온 책이 바로 이 "총, 균, 쇠"네요.
그러니 이건 -감히 말하건대- 작가가 인류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세레나데, 사랑가입니다.
인류에게 애정이 없다면 이마만큼의 탐구력과 집요함으로 이렇게 방대한 양의 연구를 내어놓지 못했을 거예요. 책을 읽어갈수록 인류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져 이토록 차갑고 독한 책이 무척 사랑스러워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작가님의 팬이 되었고요. 작가님은 이름도 어쩜 다이아몬드이신지.. 탄소 광물의 인간화가 바로 작가님 아니신지. 보석이 써서 그런지 책의 논증도 너무 탄탄해서 무엇으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을 것 같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듯 이 책의 텍스트도 영원히 빛날 것 같고. 어쩜 그 부분에 안나 카레니나의 대사를 인용할 생각을 하셨는지 정말 적절하고 적당히 유머러스하며 그보다 딱 맞는 비유는 더 이상 없...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질문이 이 책의 모든 출발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이 되겠습니다. 작가가 모든 대륙을 싹 훑어주니까 한 번 읽어보는 것이 고리짝 조상들의 시간을 이해하는 한 걸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주먹도끼 한 번 쥐어보고 '오 신기하네-' 정도의 감상만 남을 해맑은 머글(=나)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겸손과 지식을 안겨 주거든요.
나아가 뉴기니인들이 특별히 지능이 낮다거나 게으르다거나 혁신을 향한 적극성이 없다는 식의 우생학적 해석에 의해, 소위 첨단의 시대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 것만큼이나. 서유럽의 사람들이 특별히 악독하고 남을 착취하기 좋아해서 여러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정복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도 얻게 됩니다. 물론 저자에게 이런 후자의 뉘앙스는 찾아볼 수 없어요. 그건 어쨌든 자신의 조상이 저질렀던(원인이야 어찌됐든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기에) 잔혹성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뭐 어찌 됐든. 누군가가 일생을 다 바쳐 연구한 성과를 침대에 드러누워서 호로록 받아먹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봐도 남는 장사입니다.
그러니까, 되게 읽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네. 이 따뜻함, 그리고 이 진절머리.
어뜨케 저만 겪나요 ^^
함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