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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너 Feb 15. 2023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만 굳어지는 신조 같은 것이 있어요. 이런 얘기 후배들 앞에서 하면 아주 꼰꼰대가 되는 거죠? 당연한 말이지만 어디 가서 떠들고 살지는 못합니다. ㅋㅋㅋ 그래도 가끔 삶의 부침을 겪는 친구나 지인들이 상담을 해오면 그때는 조심스레 이야기해 보고는 해요. 


 인생은 인간보다 강하다고요.


 인생의 힘이란 실로 대단하여 그 앞에서는 아무리 찧고 까불어봐야 뭐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살다가 그놈이 무자비하게 날리는 펀치를 마주하게 되면 거기에 정면으로 맞짱 뜨는 건 좀 위험한 일이죠. 차라리 때리면 때리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눈 꼭 감고 쓰러지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놈의 힘이 빠져 당신을 지나갈 때까지 나 죽었소-하고, 곰에 쫓기던 나그네처럼 숨도 쉬지 말고 뒤진 척 그렇게 누워 있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는 해요. 


 해서 제가 생각하는 인간 개개인의 삶이란 늘 그 실체 없는 인생이란 놈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거대한 힘 앞에 대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토록 하찮고 짧은 생에의 찰나를 또 이렇게 약하고 여린 인간 하나가 어떤 의무감으로 맞이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어 늘 어깨에 짐 하나를 이고 사는 느낌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전 그 동력이 끊임없이 제공되어야 하는 좀 귀찮은 사람입니다. 어릴 때 어떤 분이 제게 '늘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때는 그게 좋은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살아보니 무척 성가신 것이더라구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오늘 얘기할 작품을 수액처럼 맞고 살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떨어질 때쯤, 그럼에도 열심히 살고 싶을 때 혹은 열심히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을 때쯤에는 영양제 투여하듯 한 번씩 읽어줘야 해요. 


 제가 또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애증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지금 인생에 대한 신념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신의가 흔들리며, 사물의 이치에 대한 믿음도 사라져 만사가 무질서하고 저주받은, 어쩌면 악마의 카오스 같은 상태에 놓였다고 굳게 믿으며 인간적 환멸의 모든 공포에 충격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살기를 원할 것이며, 일단 그 술잔에 입을 댄 이상 그걸 모두 마셔 버리기 전에는 입을 떼지 않겠다고 말이야! (중략) 내 젊은은 그 모든 것을, 모든 환멸, 삶에 대한 모든 혐오감을 극복할 거야. 나는 수없이 자문해 보았어.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처럼 열렬하고 거친 삶을 향한 갈망을 이길 만한 그런 절망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하고 말이야. 


 대학생 때 이 부분을 읽고 이반의 기세에 흠칫 놀란 적이 있어요. 알료샤는 거기에 열정적으로 답하면서 종지를 찍어버립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또 이반은,


 "삶의 의미 이상으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지?"


 하고 받아버려요. 대단한 형제들..

 

 가슴 뛰는 말이었지만. 


 삶의 의미를 넘어서 삶을 사랑하는 이유들을,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고, 순진한 꼬꼬마 대학생이 얼핏 절망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요. 그런 의미로요. 이 책은 제게 큰 채찍질이 됩니다. 물고기를 몇 날 며칠 잡지 못한 상황에 드리우는 가난의 냄새. 그럼에도 야구를 즐기는 여유라든가. 삼일 밤낮을 씨름하여 건져낸 물고기가 상어 떼에게 뜯어 먹힌다 해도. 때때로 소년을 생각하며 지극한 우정을, 그리움을 간직한 채로.

 

 마침내 사자꿈을 꾸며 잠에 빠져드는 노인의 모습은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하는 감동을 줍니다.  



 인생은 인간보다 강하잖아. 그렇지만.

 그 안에서 부서질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숭고함이란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작고 하찮은 인간 하나가 찰나의 시간을 스쳐가며 바스라질 어떤 시공 가운데 지켜내야 할 의무이자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미세먼지(=본인)만큼 하찮고 무의미 해도 웅장하게 살 수 있다는 뽕이 차오르는 순간.

       

 헤밍웨이의 다른 단편은 좀 어렵고 난해하던데(킬리만자로의 눈....같은...) 오늘 말하게 될 '노인과 바다'만큼은 선명하고 굵어서 읽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아 물론 낚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모든 묘사를 다 알아듣는 건 아니고요. 그저 '아 지금 노인이 무척 힘든 상황이구나-' 정도만 더듬더듬 이해할 뿐이에요. ㅋㅋㅋㅋ 그렇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온기를 느끼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물론 세세한 장면까지 그려질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으니 넘어가도 됩니다. ㅋㅋㅋ 



 한 번쯤 (아 물론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을 거라 제가 여기서 방귀 뀌는 게 우습지만) 읽어보시고, 두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편이라 짧기도 하구요. 힘차고 굵은 소설이라 목구멍을 꽉 채워 쑤욱-하고 내려가는 경험도 하실 거예요. 


 오늘도 하찮음을 받아들인 우리 작은 존재들. 그렇지만 패배하지 않고 존나 버티며 잘 살아보아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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