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책 좀 읽고 방귀 좀 뀌어봤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편견이 막은 책 읽기 시리즈는 몇 권 존재합니다. 그니까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자주 등장했던 이런 책들. 오늘 말하게 될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나 소크라테스의 변명, 사마천의 사기 같은 애들 있잖아요. 제목만 아는 책들이요. 이 책들은 듣기만 해도 하품 나오게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에 쉽게 접근이 안 돼요. 제목만 하도 많이 들어봐서 그 자체로 하나의 구전설화 주인공 같고 나와는 일평생 연이 안 닿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도 있죠.
클라스는 영원하다고..
영원한 클라스에 치여 이 책을 읽고 난 후 입이 근질거려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니까
구전설화처럼 내려올 정도의 유명한 책이면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이유는 정말로 그만하기 때문에 그만하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각설하고,
이 책은 독한 놈이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날 것 그대로의 독기를-심지어 진지하게- 뿜어낸 책입니다. 도덕에 대한 고려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의식 한 점이 없고 오로지 권력을 향한 적토마 같은 기세가 느껴지는데 그게 새삼 골 때리고 좋았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 살펴보자면,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인 군주라고 꼽는 모델 중 체사레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태생부터가 교황의 사생아(...)로 디폴트가 하드코어인데 로마냐 공작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더 합니다.
자기 대신 악역을 맡을 사람을 선정한 뒤 정복지로 보내 그 동네 인민 군기 뽝 잡고 그로 인해 성난 사람들에게는 '난 아냐. 쟤 탓이야' 하는 오리발을 시전 합니다.
여기서 무서운 건 체사레가 자기 대신 보낸 그놈의 단 물을 다 뽑았다 싶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단칼에 처형시킨 뒤 걔가 다스리던 지역 길거리에 그놈 시체를 두 동강 내어 늘어놓았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걸로 체사레는 백성에게 내밀었던 오리발 굳히기가 확실히 된 동시에 그 동네 인민들은 어딘지 모르게 그가 무서워지기 시작했고요. 자신들에게 따뜻하나 빡 돌면 감당하기 어려운 똘군주의 조합은 어쨌든 백성에게 공포와 애정의 대상
이자
그 대상인 체사레에게는 군주짓(?) 해 먹기 딱 좋은 환경이지요.
이런 건 평범한 감정을 가진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닌 듯합니다. 역시 한자리해 먹으려면 보통 머리 좋고 독하지 않으면 안 됨. 허허허.
대체로 이런 책입니다. 군주에게 올바른-그가 생각하기에- 통치 방식을 간하며 올린 글 같은데 그게 참 일목요연하게도 쓰여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비겁함, 찌질함, 간사함 등을 전제로 깔고 모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게 맞죠. 실전서잖아요.
실전은 이념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의 최악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주의가 이거 못해서 망한 거 아닙니까.
전 그래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보다 훨씬 좋았어요. 사실 정~말 좋았습니다. 왜 좋았을까 싶은데 아마 제 마음 어딘가의 못된 구석이 신나 하는 느낌을 받았구요. 허허.
무엇보다 이 모든 인간의 구질구질함을 인정한 채로 시작하는 현실 인식에서 마키아벨리의 진정성(?)이 느껴서 좋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말로 군주가 권력을 좀 강하게 잡고 오래 유지해서 나라가 안정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느껴졌달까요.
물론 마키아벨리가 가장 옹호했던 정체는 공화정이라고 하던데. 이 또한 제게는 군주론의 진정성을 한층 더 보강해 주는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가장 원했던 정체는 모두가 권력을 나눠 갖고 서로를 견제하는 공화정의 그것이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그나마의 차선책을 찾아본 것이라고 -제 맘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쪼록
저처럼 편견이 막은 책 읽기로 이 책을 아직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시라는 추천을 드리며 첫 매거진 발행 독후감을 마칠게요. 힣.
그리고 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