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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Oct 12. 2024

나는 그저

브랜드의 익힘 정도

좋은 브랜드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요즘만큼 브랜드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가 없지만 그래도 어차피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자기 브랜딩의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나를? 어휴 남사스럽구로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만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내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만든 사람을 궁금해할 거고, 재미있는 일들을 해볼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미 무언가 많이 해본 브랜드들보다 작고 얼마 안 된 브랜드나 회사들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간단한 카카오톡 푸시 메시지부터 큼지막한 브랜드 슬로건까지 할 게 너무 많지만 그래도 그 열을 맞춰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모든 것들이 잘 어울리게 만들어가는 시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그럼 좋은 브랜드란 무엇이냐. 내 기준에서는 서로서로 모든 것이 어울리는 브랜드였다. 무엇 하나 너무 삐죽 튀어나오지 않고 브랜드에서 만들어내는 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 말이다. 그저 비싼 브랜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것들을 일관성 있게 갖추는 것. 일관성을 ‘갖춘다’고 표현한 것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밀도가 떨어지게 해서 일관성을 가지게 하는 건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여기까지 신경 썼어?’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갖추어야 하는 영역이다. 엄청 1차원적으로 말해보면 세상 인테리어 잘해놓은 고오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화장실에 아이깨끗해 핸드워시가 있는 것, 나는 이런 상태를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완벽에 가까운 청소상태는 당연히 디폴트. 아이깨끗해 비난 아님. 나도 잘 쓰고 있음…)


음식만 맛있으면 되는 거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경험의 일관성은 이런 것이었다. 어차피 좋은 경험을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저런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하지만 이게 돈과 연관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용을 타이트하게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번 이솝 핸드워시를 사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솝 공병에 저렴한 핸드워시를 채워 넣거나 비슷한 느낌의 용기를 사서 마찬가지로 다른 제품을 넣는 거다. 다 이해할 수 있다. 식재료비를 아끼느라 싼 것을 쓰느니 핸드워시 따위 아무거나 쓰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니까. 브랜드, 곧 회사에게 있어 생존에 앞서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망하면 일관성이고 나발이고 아이깨끗해를 살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깨끗해 매우 잘씁니다…)


브랜드가 난무하는 시대에 브랜드를 알리는 것은 더 어렵다. 브랜드만 정리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알리느냐도 또 다른 숙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많이 파는 게 개이득이다. 하지만 그 브랜드가 보여주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다로운, 하지만 그래도 보는 눈 있다는 소리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면 그저 스피커를 광광 울려대는 게 대수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좋아하게 된 많은 브랜드들도 보는 눈이 밝은 나의 친구들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 사이에서 ㅇㅈ마크를 받은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마음을 열고 그 브랜드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 얼마나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인가. 일도 많고 돈도 벌어야 하고 바빠죽겠는데 스피커 볼륨 키우고 말지.


물론 스피커 볼륨을 키우는 과감한 결정을 통해 물건을 많이 팔고 신분세탁(?)을 하는 70년대 형님 같은 브랜드들도 요즘은 많아진 것 같다. 신분세탁의 시점에 메타인지만 잘 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의 코어를 놓치지 않는다면 나는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쉬운 게 아니다. 볼륨을 키워버리는 과정에서 돈도 많이 들고 브랜드의 코어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너 변했어.”하고 떠나지 않도록 섬세하게 그런 듯 아닌 듯 관리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쉬운 게 하나 없네. 그냥 다 때려치우고 홈프로텍터로 사는 건 어떨까 5초 정도 생각해 봤지만 그 또한 잘 못하기 때문에 나는 어깨너머 배운 이 도둑질을 계속해야 한다. 뭐든 실행해 보고 고민하라는 맞말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의한다.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안성재도 아니고 브랜드의 익힘을 따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저 좋은 브랜드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먹지도 못하는 꽃을 접시에서 내리고, 빠쓰 만드는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귀에다 대고 “나야, 들기름”하고 위트 있게 속삭여주고도 싶었다. 가끔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1000만 원짜리 질소냉동장비를 들고 나타나거나 편의점 빵의 크림을 퍼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처럼 의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내 브랜드를 좋아해 준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면 “왜 저래(정색)”가 아닌 한 성장캐의 에피소드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더더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것이 브랜드, 곧 회사의 힘이 되어주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살아남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사랑받으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긴 하지만 살아남아야 사랑받을 수 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의 선택들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방법이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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