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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Oct 26. 2020

저희 애는 수능 안볼거에요.

너네 애나 잘 키우세요.



나는 어쩌다보니 상대적으로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 십년째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내년에 일곱살이 된다.

유치원이 끝나면, 아이는 삼삼오오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다른 친구들의 엄마나 할머니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실 나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정확히 말하면 별로 안친한 사람들과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요즘은 날씨가 좋으니 이야기 할 일이 잦아졌고, 자연스레 아이들의 교육 이야기로 주제가 좁혀진다.


"민우는 요즘 뭐해? 우리 세희는 요즘 구몬 시작했어. 한글 떼려구."

" 어머. 한글 잘하겠네요. 저희도 그냥 한글하고, 수학 학습지만해요. "

" 아, 그래. 우리 지연이는 한글은 재미없어 해서 아직은 수학 학습지만해. 수놀이 하는 게 재밌나봐."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면, 나는 자연스레 할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할말이 없어진 나에게 어느샌가 시선이 쏠려서 은근하게 물어보신다.

"소희는 요즘 뭐배워. 한글도 곧 잘 알고. 우리 지우한테 더하기도 알려줬다고 하던데."


"아.. 저희는 발레만 해요. 발레복 입는 것도 좋아하고, 자세 교정도 된다고해서요."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 할머니들의 시선은 두가지다.


1. 아이를 예체능 전공자로 키우려고 발레를 시키는것인지 궁금하구나. 어서 더 말해보거라.

2. 그래서 발레 말고 따른건 뭘 하는지 궁금하구나. 어서 더 말해보거라.


"소희는 키도 크고 날씬해서 발레 잘하는가보구나. 발레하면 좋지. 우리 지우도 세살때부터 발레 하긴 했었어.그럼 한글이나 수학 같은 학습지는 안해?"

" 아 네. 딱히 아직은..."


은근하면서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어보시지만, 시원치 않은 내 답변에 금새 실망들을 하신다.

그리곤, 둘째맘들의 훈수가 시작된다.


"원래 예체능은 저학년까지 끝내놔야 되니까 지금 하는게 좋아. 악기도 하나쯤은 다뤄야 하니까 피아노도 지금부터 시켜놓으면 좋고. 고학년 되면 수학이랑 과학 따라가기도 바쁘거든. 그리고 어릴때부터 영어 파닉스를 기본으로 해놔야 1학년 입학해서 안뒤쳐져. 소희는 말이 빠르니까 곧 파닉스 시켜도 되겠다. "


"아... 저는 아직 뭐 많이 가르칠 여유도 없고, 소희가 그냥 저랑 노는 걸 좋아해서..."


" 에이.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거지. 사학년만 되도 학원 돌리고 집에오면 열시야. 그때가서 따라가려면 늦으니까...인서울 하기가 요즘은 우리때보다 더 힘들대. 그러니 어쩌겠어"


머리가 지끈대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작 여섯살 아이에게 인서울이라니...

물론 가치관의 차이가 큰 거겠지만, 이런 대화 틈바구니에서 나같은 돌연변이(?)가 끼어 앉아 있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나도 수차례 이런 대화에서 네^^맞아요^^ 이렇게 웃어넘기다가, 며칠전 나도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저희는 소희가 수능을 안보는게 목표라서..."


이 말에 다들 흠칫하는 분위기였고, 무슨 대단한 계획이라도 있는지 물었다. (사실은 물어 뜯겼다.)


"뭐어? 수능 안보면 어쩌려구? 대학 안갈거야."

"아....뭐 본인이 가고 싶다고 하면 가는거긴 한데. 수능이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되면 외국에 가서 공부하면 좋을거 같기도 하고, 대학은 원하지 않으면 뭐 어른되서 하고싶은 일 하면서 가게라도 운영하는게 훨씬 더 사는데 도움되지 않을까요..하하하"


"에이. 모르는 소리마. 아직 소희엄마가 젊어서 그래.(난 어딜가든 아이엄마치곤 어린 편이다.) 요즘 대학나와도 놀고 먹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대학을 안보내. 나중에 뭐먹고 살려구."


"아.. 하하 그런가요.."


더 이상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자연스레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나는 밖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과 내가 합의를 이룬 바 있는 "소희 수능 안보게 하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1. 저런 어려서 철부지 생각을 하는 부부를 보았나,

2. 아직 때가 덜 묻었구나. 너도 때되면 나보다 더 열성으로 사교육을 시킬거다.

3. 돈많냐?


라는 시선을 보낸다.


뭐 내가 사람들의 시선에 일일히 대꾸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부부가 직접 교육받고, 사회생활을 해본 결과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나의 솔직한 생각은 이렇다.


1. 난 소희가 "하고 싶을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2.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하고싶은 일을 하려면 소희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3. "부자"가 되려면, "돈 버는 방법"을 알아야 하니, 우린 어릴 때부터 이걸 알려줄거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땐 부자가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수능"이다.

주입식 교육을 집대성한 수능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다...는 대단한 이야기는 둘째라 쳐도,

인풋대비 아웃풋이 너무 안좋다.


다들 어릴때부터 돈을 그렇게 쏟아 붓는데, 그래서 인서울 혹은 더 좋은 명문대에 간들. 수능점수는 부자가 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회사에서 숱하게 봐왔다. 나도 처음엔 내로라하는 대학나온 직장 동료들에게 기가 죽었었지만, 쥐뿔.

회사에서 일하는 거랑 수능점수랑은 전.혀.상관이 없다.

애초에 회사에서 일잘한다는 건 나와 상사와의 케미가 얼마나 좋으냐에 대한 문제가 크고, 그렇게 케미가 좋아서 일을 잘한다고 해봐야 받는 월급은 쟤나 나나 똑같다.

그냥 지금 2020년 버전으로는 상급자들이 좋은 학교 출신이 많으므로 학연으로 승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여기에서 상당히 위험한 상상은.

60년대 혹은 70년대 생이 교육받아 왔던 것 처럼. 그대로 교육받고 자랐을 때. 원하는 삶(직장인..?)이 보장되느냐는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직장인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직장인이 되는 순간 직장인에서 벗어나고 싶은게 현실인데 이걸 또 내 아이에게 물려줄 계획을 여섯살부터 짜야한다니..


나는 소희가 직장생활을 하길 바라지도 않거니와 굳이 원한다 해도 잠깐 발만 담궜다가(?) 나오길 바란다.

그러니 여섯살 난 아이에게 영어는 기본에 한글떼기와 수학(정확히 말하면 단순 연산)을 매일매일 시킨다는 것은 소희 창의력은 둘째고, 돈이..아깝다는게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 그 돈 아껴서 뭐할거냐고?

물론 현재 버전이기는 하지만, 소희는 왠만하면 국제학교에 최대한 빠르게 입학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국제학교라고 말하면 다들 우리집이 엄청나게 돈이 썩어나는 줄 알겠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돈을 벌며 사는 집이다. 그냥, 다른 루트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맘이 현실화 된게 국제학교라는거다.

(그래서 자금계획이 여의치 않으면 국제학교는 못보낼 수도 있다.)


어쨌든 수능이라는 틀에 갇혀서 내 아이를 노예의 삶에 뛰어들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목표인데.

다수의 목표와 다른 내 목표를 현실에서 실현하려니 정말이지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한다는 걸 매번 느낀다.


국제학교에 보내고자 하니, 선행으로 영어를 시켜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영유를 안보내면 못따라간다, 영유 보낼 형편이 안되면 방과후 영어라도 시켜서 노출을 계속해줘야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도 말을 못하는데 가서 수업을 할 수 있을까..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실제 현지 아이들도 파닉스와 스펠링을 아홉살이나 되어야 노멀하게 할 수 있게 되며, 설사 조금 늦는다고 하더라도 언어라는 것은 함께 생활하면서 습득하는 것이기에 지금 내가 영어 준비를 빡세게 시키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입학해서 영어를 못하면.. 그때 고민하면 될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외국에는 안살아봐서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획일화 된 생각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게 참 어렵다. 다른 생각에 대해 비난하거나 큰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은근한 무시와 질투심. 기타 등등...


휴...

자기 애나 자기가 원하는대로 키울 것이지.. 나와 내 애 인생에 이렇게 참견할 것들은 또 뭐람...

이렇게 많은 풍파속에서 내가 소신(?)을 지키며 아이를 부자로 키울 수 있을지...ㅎ



어찌됐든 오늘도 소희는 먹고 놀고 떠들기만 하는 유치원에 등원했고, 끝나고 나면 공주 발레복입고 한시간 뛰놀 예정이다.


아가.

엄마는 네가 자유로운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사는 맘편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네가 원하는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심하게 널 관찰하며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같이 배워보자.

엄마가 휘둘리지 않고 나아갈게.


그리고, 나랑 교육관이 안맞는 분들은..본인 로직에 따라 아이를 키웠으면 좋겠다.

나의 로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말고.




오랜만에 한평 짜리 서재에서 쓰는 넋두리 by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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