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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Sep 16. 2020

엄마가 메신저 피싱을 당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거늘.

얼마 전, 남편의 늦은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온 터라 늦잠을 자는 중이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왔고, 자는 중이라서 안받았다.

그런데 엄마는 어지간해서는 오전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할 일이 없는 게 찜찜해서 혹시 몰라 카톡을 했다.

무슨일이 있냐고. 

그런데 엄마의 답변

"당한 것 같은데."

응?

난 왠 뚱단지 같은 이야기인가 했는데, 엄마는 다짜고짜 내 핸드폰 액정 깨지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물론.안깨졌다.

"뭐야. 보이스피싱 당했나?"

이때만해도 사태파악이 안되서 큭큭거렸다.

그런것 같다며, 돈을 보내줬단다.

그리고 난 "액정이 깨졌냐"는 물음을 상기시키며, 몇만원 정도 보내줬겠구나 했다.

"얼마나 보내줬는데?"

"칠백."

오.

마.

이.

갓.


갑자기 정신이 팍 들었고,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부랴부랴 엄마랑 같이 사는 남동생과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고, 엄마는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되는 듯 했다. 

내 카카오톡 화면과 똑같은 화면으로 "나"를 위장한 사기꾼이,

전세 연장을 위한 돈이 다른 통장에 묶여 있는데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오늘 처리가 곤란하다며

금방 보내줄테니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단 것이다. 여행을 갔다와서 피곤하다는 세세한 핑계까지 대면서...

내 카카오톡 계정이 탈탈 털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알고 있는 모든 웹사이트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엄마한테 칠백만원이란 돈이 어디에서 났을까.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 줬단다. 것도 핸드폰 이체도 할 줄 몰라서 농협에 가서.

농협직원은 돈을 보내기 직전까지 핸드폰 액정이 깨졌다고 다른 사람 명의로 돈을 보내달라는 게 이상하니, 

사위한테 전화를 해보라고 했는데.

엄마랑 내 남편은 워낙 전화통화를 안하는 사이기도 하고, 여행 중인 나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전화를 안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카톡으로 전달한 내용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살면서 엄마가 그토록 놀란 걸 본 것은 처음이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두근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마.

당장 내가 엄마한테 간다고 해결될 노릇도 아닌지라 우선 청심환을 사먹고 정신과에 가서 안정제라도 처방 받으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엄마를 달랬다.

그리고 이틀 간 나는 밤 잠을 설쳤고, 사흘째 되던 날 밤 모두가 잠든 무렵 혼자 거실로 나왔다.


돈을 이렇게 허망하게 쓸 수가 있냐며, 

엄마가 멍청해서 그런거냐며, 

엄마가 복이 없어서 그런거냐며, 

.

.

.

그 외에도 사흘 간 수많은 엄마의 자책이 담긴 메시지를 나는 그저 꾹꾹 담아두고, 괜찮다고. 큰 돈 아니니 걱정말라고 위로했었는데.

담아두던 나의 그릇도 폭발한 것이다. 


답답하기도 했고, 화도 났다. 억울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애증관계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딸이 돈이 급하다는 한마디에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서 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펐다.  

결국 눈물이 났고, 그 눈물은 여태껏 흘린 눈물 중에 가장 아팠다.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눈물이 말랐는지 지쳐서 잠이 왔는지 나는 잠이 들어 있었다. 


엄마의 자책은 계속 되었고, 나는 그런 엄마가 혹시나 나쁜 마음이라도 먹을까 싶어 괜찮다며 위로했다. 

잃어버린 칠백만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에서는 계속 수사도 진행중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 참에 돈을 다루는 방식을 바꿔보라고 알아듣기 쉽게 아주 천천히 설득했다.


1. 마이너스 통장을 없앨 것

2. 저금리의 적금보다는 차라리 삼성전자 주식을 사 모을 것 

3. 주식은 한꺼번에 사지 않고, 오만원 또는 십만원짜리 물건이 사고 싶을 때마다 한 개씩 살 것


처음에 너무 놀랐던 엄마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내 말을 차근차근 실행해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놀라고 허망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아빠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이 분위기에 무슨 제주도냐며 난색을 표했지만,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천장보며 우울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결국엔 딸한테 떠밀려서(?) 다음주에 엄마아빠는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보이스 피싱을 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빠는 갑자기 난데없는 효도여행을 나서게 되었고.ㅎ


칠백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피싱을 경찰에 신고한 직후 통장 명의자의 모든 통장과 신용카드는 지급정지가 된 상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도 피해자라고 주장을 하고 있고. 2개월 이내에 통장 명의자가 자신이 범죄자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면 통장에 남아있는 돈이 엄마 통장에 들어온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결론이 날런지는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칠천만원도 아니고, 칠억도 아니고.

돈의 액수보다는 어쩌다 멍청하게 피싱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이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는 중이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엄마도 이참에 돈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수업료를 아주 세게 지불한 것 같다. 

과소비는 안하지만, 따지고 보면 안사도 되는 물건들을 자주 샀던 엄마는 이제 틈나는대로 주식을 사기로 했고,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피싱 사건을 핑계로 돈에 대한 경험치가 늘었고, 원래 마음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기로 했다. 




흐린 하늘이 보이는 한 평짜리 서재에서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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