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족구왕>
'취향'이라는 단어의 용례는 이제 더 이상 영화, 음식, 술 등 소비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 전반을 가로지르는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삶의 목적과 방향성 등에까지 '취향'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영화의 주인공 미소는 이 취향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녀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이 단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위스키와 담배는 집보다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호식품이라고 취급받을 수 있는 이 둘을 지키고자 집도 버릴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안식처로 삼을 수 있는 것(곳)은 집이 아닌 담배와 위스키이기 때문이다. 집이 있으면 뭐 하나? 보일러도 틀 수 없어 남자친구와 사랑조차 나눌 수 없는 것을. 집은 그녀에게 Home이 아닌 House 일뿐이다.
미소는 자존하는 사람이다. 집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더라도, 친구에게 비난받을지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법에 따르자면 비참하다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몰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을 건넬 줄 아는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때는 바로 또 다른 안식처인 남자친구가 떠날 때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을 또 다른 기둥 삼아 인생이란 집을 잘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가진 취향은 각자의 인생 전 영역에서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취향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아내든, 그 취향들을 철저히 따라 나갔을 때에만 사르트르가 말했던 실존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났으니 선택하고 결정하며, 각자 만의 목적을 만들어 살아간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취향'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광화문시네마는 2013년에도 이와 유사한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안재홍 주연의 <족구왕>에서는 후회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거침없는 선택을 해나간다. 따분함과 지루함만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인생은 그 선택들로 인해 구원받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 두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 하지만 그 말의 무게감은 가볍지 않다. <소공녀>의 미소는 자신의 취향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다한다. 맡은 바 일은 완벽히 수행해내는 프로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족구왕>의 만섭 또한 주어진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족구처럼 아르바이트에도 헌신을 다한다. 이 두 영화는 욜로만을 외치며 놀고먹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요즘의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일갈한다. 어쩌면, 이 두 영화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유이다. 미소와 만섭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호'일 것이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는 관객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영화일 것이다.
<족구왕>, 2013
<소공녀>,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