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마지막 생일상
아버지가 입원 중이신 일산병원을 형과 함께 찾았다
담당의사를 만나 긴히 의논할 얘기가 있어
따로 외래상담 신청을 하고 찾아뵙기로 하였다
아버지가 2주 후 생신이신데 집으로 모시고 나와
가족끼리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요량으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사실상 그동안 해오던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2년여간 열네 번의 색전술과 2번의 수술..
마지막으로 선택한 항암치료 2달 만에 사실상 포기 선언을 한 샘이다
암환자의 가족들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80%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모님의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90%의 암환자 가족이 또다시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수술과 항암치료를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양날의 검인걸 알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말기암 환자의 가족들의 고충을 말해주는 단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역시 차라리 이렇게 두 달 만에 아버지가 급속도로 쇠약해지는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첨부터 항암치료를 선택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 섞인
생각도 해본다
두 달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다
아버지에겐 잠시 외출을 허락받아 집에서 보내시다 다시 병원에 올 거라고 했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마지막이란 걸 아셨을지 모른다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다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빠른 시일에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몸에 좋은 약물(영양재)을 집중 투여해줄 것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고 2주가 가까워지자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식사도 하실 수 있을 정도의 몸상태가 되셨다
병원을 나서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생신 때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어디 좋은 데 가고 싶으신데 없으세요?"
원래도 생신을 밖에 나가 하지 않고 가족들 모두모여 집에서 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이번 역시 집에서 하시길 원하셨다
특별히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아버지 몸 상태도 그렇고 본인이 원하시는 데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생신 이틀 전 아버지께 솔깃할 장소를 말씀드려보았다
"아버지 가까운 계곡에 가서 식사하고 오시는 건 어떠세요?"
아버지는 우리들이 어릴 적 주말이면 북한산 계곡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 한나절 물놀이를 하다 오는 걸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생각이 문득 떠올라 내 제안에 분명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 말씀드린 장소였다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우이동 계곡에는
평상을 물가 자리에 펼쳐놓고 비싼 값을 받으며
닭백숙과 닭매운탕을 파는 그런 집들이 아직까지 있었다
그곳에서 옛날 생각하며 가족들 모두모여
아버지 생신을 축하해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아버지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갈 생각에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나에게 자리 좋은 집으로 한번 알아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막내아들이 제안한 이벤트를 거절하시기 미안했던 모양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음력 7월 5일 이틀 뒤가 아버지 생신이지만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수박도 한통 사고 케이크도 준비하였다
서울에서 유일한 우이동 계곡엔 아직도 저런 식당들이 계곡을 따라 여러 곳이 성행 중이다
며칠 전까지 장맛비가 많이 내려 계곡엔 물이 한가득이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8월의 한낮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채면 따위는 내던진 지 오래였다
아버지 병간호에 모두들 지쳐 갈 무렵 한줄기 햇살 같은 꿀 같은 휴식이었다
아버지는 새 모이만큼의 식사를 마치시고
평상에 몸을 뉘었다
많이 힘들었을 몸을 이끌고 마지막일지 모를
가족모임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버티셨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꿀맛 같던 휴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는 다음날 고열로 인하여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다시 입원하였다
올해는 아버지 생신이 8월 중순에나 돌아온다
이번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엔 주인공이 없다
아들이 며칠 전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아빠.. 그러고 보니까 할아버지 목소리가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니 정말 아버지 목소리가 들어간 동영상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우이동 계곡에서 와이프가 찍어놓은 생일파티의 2분여의 동영상속에 아버지의 살아생전 모습이 담겨있지만 그곳엔 아버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함께한 50여 년 동안
아버지의 음성이 들어간 동영상이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후회스러운 부분이다
이젠 꿈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음성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일상생활의 모든 게 아직은 아버지와의 추억과 연관되어있다
밥 먹을 때 소풍 갈 때.. 눈떠서 잠들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직은 생생한 기억의 아버지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렇게 문득문득 생각날 때
나만의 공간에서 아버지를 기록하고 추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