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도토리묵 사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친하지는 않았지만 꽤 똑똑하고 부자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결국 서울대를 갔다.
내가 왜 그 아이를 부자처럼 보였다고 기억하냐면, 매일 택시를 타고 학교에 왔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엄마는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고, 나와 남동생도 몇 번 수업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몇 번 받아보니 솔직히 잘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선입금으로 꽤 큰 돈을 과외비로 받아 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무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을 보고 나서까지도 말이다.
돌려줄 돈은 없다고 하면서도, 그 친구는 여전히 택시를 타고 등교했다.
보충수업 때 사복을 입는 날이면
그 친구는 내가 늘 입고 싶었던 하늘하늘한 하얀색 스커트를 두 벌이나 사서 입고 다녔다.
나는 그 스커트를 입고 싶었지만 가격을 물어봤을 때
3만원 정도라고 들었다.
그때의 나에게 3만원은 너무 비쌌다.
나는 그냥 엄마가 사주는 옷만 입었다.
우연히 그 친구가 같은 동네 독서실을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독서실 실장님께 부탁해서 그 친구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 주소를 아빠에게 줬다.
엄마가 받지 못한 돈을
아빠가 가서 받아오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달리
천둥 같은 목소리로 화를 낼 줄 아는, 다혈질인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큰 소리조차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수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시험이 끝난 뒤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능이 끝난 뒤 나는 인사동의 한 전통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은 이천오백 원이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
그 친구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워니 친구 주희인데요.
아줌마, 저희 엄마에게 아직 못 갚으신 돈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제가 수능 보느라 바빠서 이제야 연락 드리네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분이 말했다.
"부모님이랑 이야기하고 전화한 거니?"
"아뇨. 제가 알아서 연락 드리는 거예요.
그동안 저희 부모님이 받으려고 했는데 못 받으셨잖아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돈을 줄 수가 없어."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워니는 지금 강남 유명 논술학원 다니고 있던데요."
잠깐 머뭇거리는 정적이 흘렀다.
"그건 사실 우리 돈으로 다니는 거 아니야.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거야."
학교에서 학원 논술비를 대준다니.. 나는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하고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제가 워니한테 직접 받을게요."
"……."
"3년 동안 안 갚으신 돈 때문에
저희 엄마가 얼마나 속앓이 하셨는지 아세요?
아줌마가 사정이 있어서 못 갚는다면
그 딸이 일해서라도 갚아야죠.
기억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받아낼 거예요.
워니가 대학 가면
저 그 대학 강의실까지 쫓아가서 받을 거예요."
잠시 후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어른들 일에 네가 뭔데 끼어들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엄마 계좌로 돈이 들어왔다.
천둥 같은 목소리를 가진 아빠도,
3년 동안 속앓이하던 엄마도
받지 못했던 그 돈이.
지난주 회사 출장으로 유럽에 갔을 때
나는 엄마에게 에르메스 스카프를 사주고 싶었다.
가난했던 아빠 밑에서 자란 나에게 노후준비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현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쥐어짜고 살았다.
엄마는 우리 세 남매를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 이었지만
명품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갖고 나서
내 가방은 몇만원짜리여도,
엄마에게 루이비통과 버버리 가방을 사줬다.
그게 어떤 보상이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숨막히던 어린 시절을 빠져나와
꽤 잘 살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리기가 죄스럽다.
너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살아왔던 환경에서 살아서 말이다.
내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성.
그건 내가 연락할 때마다 받지 않는 엄마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나는 그게 너무 서러웠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는 엄마를 가진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일상에서의 문제들은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했다.
어릴 때의 그런 마음이 자꾸 올라오기 때문에
지금도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받지 않을 가능성이 99%인 전화를
1%의 기대로 거는 기분.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 카톡 알람만 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출장 중 에르메스 매장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전날 엄마에게 문자를 하며 신신당부했다.
내일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전화할 거니까 핸드폰 꼭 보고 있어.
매장에서 여러 스카프를 보며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역시나 엄마는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
전화를 몇 번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셀러에게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하며
멋쩍게 웃고 매장을 나왔다.
그 뒤로도 한참을 엄마는 답이 없었다.
나는 하루 전에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도,
이렇게까지 오래 답이 없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지 않는 이상,
이럴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때 쯤 전화가 왔다.
주방에서 도토리묵을 쑤고 있었다고 했다.
으례 그렇듯 내 카카오톡 알람만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행기 시간이 다가와서 빨리 공항을 가야 했고,
그렇게 18시간의 비행 끝에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남편을 만나자마자
너무 불편한 내 마음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장문 카톡을 보냈다.
내가 얼마나 동동거리며 엄마 연락을 기다렸는지 아냐고.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건 정말로 소박하게,
내가 엄마가 필요할 때 내 연락을 받는 것뿐이라고.
엄마는 알고 보니 내 카카오톡 알람만 무음 처리가 되어 있어서
그동안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고,
엄마도 IT 같은 걸 잘 몰라서 생긴 문제라고 했다.
엄마 핸드폰에 내 알람이 울리지 않는 문제는 오랫동안 있었던 것이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전날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핸드폰을 보고 있으라고 했던 건데.
그게 엄마에게는 받으면 좋고,
아니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종류의 것이었을 것이다.
출장을 다녀와서 밀렸던 일들과, 안 그래도 바쁜 월초 일들을 하느라
하루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일만 했다.
일이 힘든 건 둘째치고, 마음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거의 일주일 내내 시도때도 없이 엉엉 울면서 일을 했다.
마음이 너무나도 괴롭고 비참해서.
엄마와 연락 한 번 제대로 안 됐다고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주륵주륵 눈물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문제 삼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사건이었다.
엄마가 떼인 돈을, 대신 받아냈던 어린시절의 나.
나는 엄마가 속상한 것이 너무 싫어서,
저렇게까지 해결해 주고 싶던 아이였는데,
그런데 엄마는
그저 부엌에서 도토리묵을 쑤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든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잘못이라기 보단
이토록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로 태어난 내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나를 비참하게 만든 사랑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그렇게나 바라던 모습의 사랑은,
내가 나에게 해주며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