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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지 Feb 16. 2022

가슴 뛰는 일을 찾겠다는 환상

백마 탄 왕자님은 나타나는 게 아니라, 내가 손수 키우는 것이다.

DEAR 핑지님 : 어떤 일이 정말 제 적성에 잘 맞고 제가 해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마치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을 것 같아 사막을 헤매는 것처럼 어딘가에는 정말 저랑 꼭 맞는 잘 맞는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성향과 안 맞는 업무는 확실히 있는데, 저랑 확실히 잘 맞는 업무는 뭔지 잘 모르겠어요.


DEAR 적성 방랑자님: 지금 당장 눈앞에 정말 간절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되, 그 경험 속에서 나의 성향을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Angela duckworth의 그릿이란 책에서 보면, 끈기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은 드라마틱하게 첫눈에 반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여러 가지 관심사를 가지면서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처음부터 나랑 뭐가 맞는지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요. 저는 10년 동안 재무기획 업무에 전문성을 쌓아왔지만 처음부터 그 업무를 잘 한건 아니에요. 저의 첫 사회생활은 영업이었거든요, 그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는데 영업 성과를 엄청 잘내서 단기간에 부팀장으로 승진을 했어요. 제가 실적이 좋았던 이유는 영업 자체가 저와 적성이 맞아서 라기보다는, 이 일을 어떻게 탁월하게 잘할까 고민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게 제가 전략가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아쉬운 소리 하면서 물건을 팔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품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분석해서 그 시장에 맞는 Prospecting (잠재 고객들이 나를 찾아오게 만드는) 전략을 짜서 일했습니다. 실제로 영업 왕들이 절대 알려주지 않는 진짜 밥줄은 prospecting 이거든요. 저는 경쟁사 상품과 비교한 우리 회사 제품의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그 수요가 되는 타깃에 맞는 채널 전략을 짜고, 꾸준히 저를 효과적으로 노출시키는 전략을 써서 영업 실적이 좋았던 거고요. 예를 들면, 영업 활동도 통계라서 영업 채널별로 어떤 데이터 베이스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고, 1시간 동안 몇 통의 전화를 할 때 몇 명의 고객을 만날 수 있고, 몇 명과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지 이런 게 다 통계로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 이렇게 집요하게 했던 제가, 이 일을 좋아서 했을까요? 겨울 칼바람 부는데 나가서, 직장인들 점심 식사하고 나오는 길목에서 상품 팜플렛 나눠 주는 일이었는데요.. 이 일이 가슴뛰게 좋아서가 아니라 일단 대학생이면서, 수업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영업이었기 때문에 한 거였습니다.


그렇게 제 상황에 맞게,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집요하게 하다 보니 제 성향을 알게 되었고, 그 성향에 맞게 성과를 내면서 아 나는 전략 짜는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칼바람 맞으면서 길거리에서 상품 팜플렛 나눠주는 일 하면서도 기본급조차 없는 저와 달리, 내로라하는 외국 MBA 나와서 삐까번쩍한 사무실 안에서 이 상품 기획하고 전략 짜고 그러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부럽더라구요. 그 누구도 저한테 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애초에 저는 그런 일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매달 회사에서 내려주는 타겟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그 사람들이 월급 받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은 저인데도 말이죠. 


"나도 저 삐까번쩍한 사무실에서 윗사람들이 뭔 얘기 하는지 알고 싶다."


저의 원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은 저의 결핍과 열등감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지원 업무 전체를 보며 전략을 짜고 싶다"라는 있어 보이는 일, 한국 대기업 다니는 분들은 저한테 넌 그런 꿈을 꿀 자격 요건부터가 안된다고 했으니까요. 보통 그런 일은 기본적으로 SKY 나온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저에게 남은 것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저의 욕심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그 사람들이 틀린 걸 증명하든지. 그래서 저에게 적성보다 중요한 건 포기할 수 없는 그 모습의 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간절함 없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틀린 걸 증명하는 것, 택도 없습니다. 그냥 욕심을 포기하세요. 안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인해 우울증 생기기 쉽상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싱가폴로 왔습니다. 외국에서는 대학 이름 때문에 그 누구도 넌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혈혈단신 한국을 떠나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 왔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배울 마음이 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재무 기획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문과생으로 영어랑 수학 싫어했고요, 차변 대변 볼 줄도 몰랐으며, 엑셀의 피벗테이블도 몰랐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그 간절함이 결국 그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저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회사 생활을 저처럼 간절하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요. 커피 심부름 하나, 점심  오는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하찮은 일들도 저이기 때문에 탁월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받는 월급이 너무나 초라해서 절대 그 정도의 일만으로 저의 몸값을 매기고 싶지 않았고, 제가 저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인정하고 증명할 수 있는 건 제가 해내는 일의 "질"이었으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저에게 주어진 업무를 6년 정도 집요하게 하고 나니, 제가 없으면 회의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또 다른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리더군요. 그토록 원했던 글로벌 기업에서의 면접 기회가 왔을 때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면접은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내가 평소에 믿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에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바로 "지금 여기" 나의 상황에서 주어진 그 일을 나 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하고 있는 하찮은 일도 의미 부여하며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이건 순전히 저의 이야기이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가슴 뛰는 일은 지금 "무엇을" 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적성 방랑자님만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함께 보면 좋을 영상 : 조던 피터슨 "무엇을 희생할지 정하세요"

https://youtu.be/_lBP9Kzee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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