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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지 Nov 10. 2023

머리 까지고 배 나온 아저씨가 날 좋아해도 괜찮은 이유

마스크 걸 김모미와 그녀의 엄마가 죽은 이유

넷플리스 드라마 마스크 걸 주인공 김모미는 자기의 외모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심지어 그녀의 엄마 또한 자기 딸임에도 불구하고 모미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두 모녀가 죽은 궁극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 나 스스로가 아름다운 꽃임을 자각하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를 보고 좋아하는 타인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귀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이 팬들의 외모를 기준으로, 팬들의 사랑을 차별하지 않듯이. 나를 좋아하는 그 마음 자체를 귀하게 여겨주는 것. 주오남이 화가 나서 미모를 곤경에 빠뜨리는 이유는 너 따위가 감히 날?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좋아하는 타인의 마음을 수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주오남 같은 남자가 나에게 공개적으로 아이시떼루라고 외쳤을 때,


내가 김모미였다면 커피 한잔 하자고 데리고 나가서 나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지, 나를 좋아하는 그 마음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했을 거다. 그 방법 면에서 혐오감을 잃으킬 정도로 투박하긴 했지만, 공개적으로라도 그렇게 고백하기까지 꾹꾹 눌러왔던 진심과 용기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들어주고 난 후, 그 마음 알겠지만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너가 나를 좋아하고 아끼는 만큼이나, 너도 내가 그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바랄 거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간이 길수록 그 감정을 추스르는 데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조건 그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정면으로 받아주고, 듣는 입장에서 가능하면 상처되지 않도록 배려하지만 어떠한 여지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힐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남녀와의 관계뿐만이 아니고, 회사에서 혹은 가족끼리 어떤 인간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이 격해진 상대방(그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의 화를 돋구는 이유는, 어떤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정작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가 해결이 어렵고 무섭다는 이유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회피해 버리면서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품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클레임을 하는 고객들은, 적어도 그 사람들이 불만족하는 이유를 들어주길 바라는데 아예 그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 해버리는 거랄까? 회사에서도 해결하기 아주 어려운 문제일수록, 사실 그 이면에는 윗사람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이나 문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아무리 회피하고 싶을지라도, 그 본능을 거스르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직급과 상관없이 진짜 리더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모미는 자기 또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으면서, 머리가 좀 까지고 배 나온 주오남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쾌감을 느끼고, 주오남의 간절한 마음을 혐오스러운 쓰레기인 것처럼 버렸을까.

그 불쾌감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보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자신의 무의식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1. 나를 좋아하는 남자의 급으로, 나의 급이 정해진다는 착각    

2.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의 무게에 대한 착각

3.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함. (소문, 스토커, 위계질서로 인한 힘의 관계)


나는 연애 상담을 하다가 굉장히 놀랐던 게,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의 급(외모, 키, 학벌, 연봉, 집안 같이 보이는 조건 등등)이 낮다고 하면서 내가 그 정도의 남자들한테 대시해 볼 만한 여자라는 점에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뭐라고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속으로 그저, 아 이 친구는 앞으로도 사랑이라는 걸 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한다. 그렇게 말한 게 충격적인 이유는, 그 사람의 보이는 조건으로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급으로 나눈다는 점과(너 따위가 감히?), 나를 좋아하는 그 사람의 조건으로 나의 급을 매긴다는 그 생각은, 그건 나 스스로를 등급으로 매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정말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군가와 진심을 주고받을 사랑이라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함께 으쌰으쌰 해서 이겨나갈 수 있는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결혼하고 나서 임신과 육아로 뚱뚱해져서 내 외모의 가치가 떨어졌을 때, 남편이 잘 나가던 직장에서 짤렸을 때, 사업을 하다가 어려워져서 반 지하에서 살면서 빚을 갚아 나가야 할 때, 인생의 어떤 어려움으로 인해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 (실제로 나는 남편과 결혼을 할 때, 이 사람과 혹시 인생에 어려운 일이 닥쳐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그런 반 지하에 살다 홍수가 나고 물을 퍼내는 순간에도, 그냥 그 힘겨운 현실조차 개그로 승화할 사람일 만큼 일상이 재밌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결혼을 했다.) 우리의 외부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마땅한 귀한 인격을 가진 존재이다. 나는 나 스스로의 존재를,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몸매가 좋기 때문에, 내가 좋은 스펙, 좋은 집안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나의 급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아는 여자라면, 설령 마흔이 넘었고, 아이가 있는데 이혼을 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절대 나 스스로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것이다. 글쎄, 나는 실제로 내가 못 생겼고,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좋은 회사를 다니지 못했으며, 박봉에, 전혀 외모에 신경 쓸 겨를 없을 정도로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 게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조건이 못났던 나나 지금의 나는, 똑같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타인 또한 그가 가진 조건과 상관없이 그만큼 가치 있게 생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 반대로 모미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 못 생겼던 외모를 수치스럽게 생각했고,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주오남의 외모로 그 사람의 마음까지 감히,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여자들이 남자한테 대쉬를 할 때는 정말로 그 남자랑 결혼해서 애 낳고 살 정도로 좋아하는 진지하고 깊은 마음이 있어야 고백이라는 걸 하는 반면, 남자들이 여자한테 대쉬 할 때는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하는 경우도 아주 아주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들의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들이대는 것에 억울하고 화가 날지 모르겠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헷갈리지 않게 좋아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표현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작은 거에 의미 부여하면서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고 싶은 건, 99.9% 착각이다.) 또한, 자기가 대쉬했던 사람에게 여지없이 분명하게 거절당했을 땐, 스토커짓 하는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상 쉽게 Move on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김풍 작가의 찌질의 역사 마지막화에서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자한테 차이고 도서관에서 엎어져 울다가도, 앞에 앉아있는 여자의 미니스커트 입은 다리를 쳐다보는, 정말 찌질한 상황으로 막을 내리는 것을 보면 그 심리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가 미성숙하거나, 부적절하고, 젠틀하지 않은 방법의 고백에서 혐오감이 드는 이유는, 아마 통제할 수 없는 것(소문, 스토커,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불안함이 클 것이다.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문화나 유교 사상의 영향이 큰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은 확실히 남자에 비해 여러모로 약자의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면, 여자들에게 주어진 기회 자체가 적은 한국 사회 특성상, 같은 무리에 있는 어떤 여자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남자들 후리고 다니는 헤픈 여자라고 소문 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소문내는 진심을 알고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복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와 사귀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앙심이랄까.. 어떻게 아냐면, 내가 당해봐서 그렇다) 소문과 뒷담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일단 그런 소문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인기 많은 내가 부럽고 시기 질투가 생겨서 라는 점을 알고, 내가 잘난 것에 대해 치뤄야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게 좋다. 그런 뒷담화에 움츠려 들고 눈치 보고 하는 순간, 내 삶이 없어진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소문을 만들고 뒷담화 문화가 번성된 조직을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답이다. 그 기분 나쁘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원동력 삼아, 더더욱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내공을 쌓아서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 내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외국이라고 해서 뒷담화가 없고 소문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조직 문화가 잘 갖춰진 글로벌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한 사람들과 일을 하면, 나대면서 성과 내는 나를 보고 박수쳐주지 그런 시기 질투 섞인 소문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가 그런 소문에 전~혀 관심이 없다 보니 모르는 걸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스토커. 사실 나는 스토커를 당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다. 스토커 짓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선 정신질환이자 범죄이다. 다만 대다수의 버버리맨들이 그렇듯이 자기가 놀라게 하고 싶은 상대가 더 무서워하고 통제할 수 있는 약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괴롭히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대부분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음지에서 그러는 것일 테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에게 좋아한다고 대놓고 고백을 하는 남자는 정신적으로 그나마 스토커 짓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 잘 들어주고, 그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때,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결혼한 남자라든지 여자친구가 있는 데,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의 경우도 충분히 혐오감이 들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회식 자리라든지 술에 취해서 고백을 한다든지 스킨십을 시도한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도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나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런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권력이 있고 돈이 많으면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넘나 좋아하는 전도연 배우가 출연한 영화 무뢰한의 한 장면 (20분 25초에 링크 걸어둠), 돈 떼먹고 안 갚는 사람을 찾아가서 김혜선이야를 세 번 외치면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데.. 그 정도의 기세가 있어야 사회생활하면서도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가혹한 현실이라면 현실이다. 물론, 내 겉모습은 세상 밝은 사람이지만, 비상 시엔 망나니 칼춤 출 수 있는 칼을 늘 내 품에 지니고 사회생활을 해왔다. 다행히 그 칼을 알아본 건지 뭔지 나한테 실제로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설령 머리가 좀 까지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내가 좋다고 고백해도 나는, 좋아하고 예쁘게 봐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 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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