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청춘예찬'을 읽고
#11권째 독서중
2015년 10월. 서른이 다 지나간다.
서른까지는 아직 오빠라고 우겼는데 서른하나는 어쩔 수 없는 아저씨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 이상 사회 초년생, 즉 초보가 아니다. 이 나이에 있어서 서투름과 실패, 비전문성은 ‘나쁨’이라는 도덕적 판단을 낳는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 책임을 져야한는, 그래서 말랑말랑했던 인격을 단단히 굳혀가야하는 시기인 것이다. 어린왕자가 이야기했던 바로 그 ‘어른’이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이다.
친구들도 나이먹어서 내 말을 이제 안듣는다. 나역시 그들 말을 안듣는다. 30년쯤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통해 성공하고 실패해왔기에 각자 제 삶에 있어서는 전문가다. 남의 말을 듣지않고 제 방식대로 한다. 어릴 적에 어른들의 대화를 보면 신기할 때가 있었다. 다들 자기 말만 하는데 대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도 많이 그렇게 되어졌다.
지나가는 내 젊음이 아쉬워졌다. 먹어도 살이 안찌던 몸의 젊음뿐 아니라 유연하고 말랑말랑하던, "난 아직 부족해"가 부끄러움이 아니던 시기. 어른 들이 그렇게 말하던 ‘찬란한 젊음’.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참 사람이 신기하고 멍청한 것이 가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무엇을 잃게되면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법이다. 이제 내가 청춘예찬이 읽혀진다. 굉장한, 그리고 쓸데없는 역설이다.
하지만 난 아직 청춘이다. 아니 반드시 청춘이어야한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이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이상에 대한 꿈과 실현할 실력과 용기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청춘이 아닌가. ‘거선의 기관’과 같이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이 아직 시들지 않았다. 나의 꿈을 생각할 때에 내가 아직 흥분되기에 난 아직 늙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찌들고 싶지 않다. 더 서툴고 더 실패해야한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