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많은 부자이고 싶다
아침 6시 30분까지 출근해서 매일 16시간 이상씩 일했던 애널리스트 삶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직업을 바꾼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그 이외의 시간은 프리랜서 번역가(영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중국어 과외 선생님, 유학 관련 조사원, 기업 IR 및 투자제안서를 제작하고 투자와 관련한 컨설팅도 간간이 진행하며 보내고 있다. 재능 거래 플랫폼에 지인들의 직구를 도우면서 모은 직구 관련 중국어 모음집을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으며, 어린이재단에서 서신 번역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취미는 독서와 꽃꽂이, 그리고 요새는 작사에 푹 빠져 지낸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석사 논문을 최종 발간하면서 2년간의 대학원 생활도 끝마쳤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고 숨이 막힌다고 했고, 또 누구는 유별나다고 했다. 너무 열심히 산다, 대단하다는 말도 진심되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들의 비아냥이 섞인 말투에 신경이 쓰였다. 심지어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강요했냐는 말까지 들어봤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데 누굴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일일이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구태여 내가 뭘 하는지 남한테 얘기할 필요도, 감정형 뱀파이어들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사실이었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나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고 했고, 오프라 윈프리는 나를 더 나은 사람들로 만들어 줄 사람들과만 어울리라고 했다. 내 마음에 질투가 섞인 비난의 화살을 꽂은 사람들은 내가 잘 돼도, 못 돼도 나에게 똑같이 행동할 거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새겨듣고 그들의 말을 따르느라 시도해보지 않고 겁먹고 포기한 것들이 많았다.
2020년 한 해는 지독한 팬데믹 속에서도 '부캐'의 열풍이 불었다. 부캐란, '본래 게임에서 널리 사용되던 용어로 부캐릭터의 준말'이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일상생활에서도 부캐가 많이 사용되면서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 재정의돼' 사용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하는 게 많은 나는 부캐의 시대가 솔직히 정말 반가웠다. 사실 부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연예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좀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
사실 우리 모두가 아는 다빈치는 진정한 부캐 부자였다. 폴리매스(저자 와카스 아메드)에 따르면, 그는 회화, 조각, 건축, 무대 설계, 음악, 군사공학, 토목공학, 수학, 통계학, 역학, 광학, 해부학, 지리학, 식물학, 동물학 등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책에서는 윈스턴 처칠, 정약용, 체 게바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저명한 인물들도 사실 다방면에 재능과 소질이 있었고 일반적으로 한 가지 분야에 오랜 기간 투자한 덕에 그 분야에 혁신을 이루었다는 우리의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와카스 아메드는 '폴리매스를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이며, 바야흐로 폴리매스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고 했다.
2020년 부캐의 본격적인 열풍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님의 다양한 직업 체험과 시도(그는 트로트 가수 유산슬, 요리사 유라섹, 드러머 유고스타 등 진정한 폴리매스의 기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싹쓰리가 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tvN 유퀴즈의 제 97화 이직의 기술에서 폴리매스 기질이 다분한 진기주 배우님과 권오철 천체사진가님의 인터뷰가 특히 인상 깊었는데, 대화 속 그들에게서 단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면의 감정과 생각은 외면으로 드러나고, 그 드러난 외면은 살아가는 내내 삶의 여러 장면에서 나타나며, 그것은 결국 내 얼굴에 새겨진다. 그래서 옛 위인들은 변해가는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멀티 페르소나(다중적 자아라는 뜻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 네이버지식백과)의 확산은 재능 거래 플랫폼의 성장세로도 알 수 있다. 재능 거래 플랫폼 중 하나인 크몽은 2016년 11월 기준 누적 거래액 100억원에서 2019년 10월 기준 월 누적 거래액 1,000억원을 기록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모바일인덱스에 의하면, 국내 대표적인 재능거래 플랫폼인 크몽, 탈잉, 숨고, 클래스101 등의 플랫폼 업체는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작년 2~4월 월간순이용자수가 전년 동기 대비 작게는 30% 많게는 10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4/0000065452). 여기에는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MZ세대의 워라블(work-life blend; 일와 삶을 적절하게 섞는다) 성향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능거래 플랫폼과 유투브, 내가 글을 적고 있는 브런치 등 여러 채널에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정말 끼가 많고, 그동안 이 끼를 보여줄 공간이 부족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여러 디지털 기술이 노동시장이 기업의 우위에 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과거 '기업은 경제활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거래비용을 시장보다 줄일 수 있었기에 노동시장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지만'(뉴타입의 시대, 저자 야마구치 슈) 이제는 시대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온전히 '나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를 위한' 실패를 해보고 '나를 위한' 도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꼭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그 모든 과정은 나를 단단하게 해준다. 내가 단단해지면 나를 돌볼 수 있고, 나뿐만 아니라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SBS 순간포착 '세상의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림 그리는 김순녀 할머니(95세)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림은 할머니의 만병통치약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3~4시간을 꼬박 앉아서 집중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늦게 시작했지만 할머니는 그림으로 삶을 되찾으셨다.
사랑하는 걸 찾기 위해 난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다.
다른 모든 게 무너져도 단 하나가 이 버겁고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데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