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지영이 아니면 그녀의 가족이다
여자, 남자, 그리고 우리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를 좋아한다. 그녀는 6살때 소아마비, 18살때 교통사고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프리다 칼로하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빠질 수 없다. 그는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으로, 프리다 칼로와는 무려 21살의 나이 차이가 난다. 프리다 칼로는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유명해졌으며, 그에게서 삶의 벼랑 끝의 절망과 고독을 얻고, 화가와 혁명가로서의 삶도 얻는다.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리베라가 벽화 제작 의뢰를 받으면서 부부의 삶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멕시코를 벗어나 낯선 땅에서 프리다 칼로는 리베라의 그늘에서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서는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게 되면서 그녀는 다시 또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당시의 프리다 칼로의 내면의 감정을 그린 작품이 <몇 개의 작은 상처들>(1935)이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 1935사고로 인한 후유증, 리베라로 인한 지독한 삶, 세번의 걸친 유산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실 등 그녀가 겪은 숱한 고통을 그녀는 그림으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에는 내면 심리 상태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그녀는 리베라의 그늘에 있으면서도 남성에 의해 여성이 억압되는 전통적인 관습을 완강하게 거부했기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헨리 포드 병원, 1932
두 명의 프리다, 1939프리다 칼로는 남편 리베라로 인해 인지도를 얻었지만, 이혼했다가 다시 합칠만큼 평생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글을 적고보니 '더와이프'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조안(글렌 클로즈)의 지극정성인 내조로 남편인 조셉 캐슬먼(조나단 프라이스)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다. 조셉과 조안은 대학교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만났는데 조셉은 조안의 남다른 글쓰기 실력을 알아보고, 그녀와 가까워지며 유부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안과 결혼을 한다. 조안은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조셉의 글을 다듬기 시작했고, 그녀가 개작한 '호두'라는 작품이 크게 성공한다. 조안은 개작으로 시작해서 글 전체를 쓰고, 결국 조셉은 그 작품에 이름만 얹히는 형국이 된다. 조안의 글로 조셉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고, 수상일 당일 내내 불편했던 조안은, 조안을 얹짢게하는 조셉의 여러 행동에 결국 이별을 선언하게 된다.
조안의 행동과 결정에는, 대학 재학 시절 한 여성 작가로 부터 '글을 쓰지 말라, 여성 작가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자는 작가로 성공할 수 없다' 라는 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프리다 칼로처럼 그녀 또한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조셉의 그늘 아래 있었다.
역사적으로 남성에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 또한 늦었기에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불편한 차별이 존재하며, 여성의 능력보다는 외모와 같은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 여전히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데, 왜 화장을 하지 않았느냐, 왜 치마를 입지 않았느냐. 고객을 더 끌어오기 위해 미인계를 사용해라, 넌 어리지 않느냐. 라는 말을 나는 정확히 2018년도에 들었다. 많이 나아졌다고 한들 아직 우리 생활 곳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회사 선배는 신입 때 예쁜 외모가 노력과 실력의 한참 위에 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직업을 바꿔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는데, 예쁜 여자는 예쁜 여자대로, 그렇지 않은 여자는 또 그렇지 않은대로 고충이 많았다. 직업적 특성상 다른 곳에서 보다 외모가 부각되는 측면이 있고, 실제로 '금융도 외모지상주의'라는 재밌지만 씁쓸하기도 한 기사도 있더라. (http://www.womaneconomy.kr/news/articleView.html?idxno=48052#_enliple). 본 연구는 중국 시장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적용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어느 국가,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므로 이런 연구가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주변에 몇 없는 여성 임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신입사원 시절보다는 내가 신입사원일 때의 사회는 훨씬 나아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성숙해지고 있다. 항상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 부분을 놓쳤을 때 우리는 그 누구도 세상을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김지영이 아니라면 그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면 여자들 또한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해야한다. 우리가 바르게 하지 않으면 여자 후배들한테 고스란히 돌아간다. 무조건 남탓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여자들이 회사에서 하는 행동들 또한 남자들도 충분히, 아니 완전히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에(나를 으악하게 하는 일들을 들은적 많다...), 남녀노소를 떠나 서로를 이해하고 노력하고 배려함이 더욱 절실한 요즘이다. 이상한 김지영 때문에 올바른 정대현이 억울하면 안된다. 차별과 역차별로 더 이상 서로를 괴롭히지 말자.
나는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가기 위해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이 버거운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꾸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려는 삶을 우리가 바라는 쪽으로 돌려놓으려고 하니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금만 더 힘을 내야 한다. 나의 작은 한 걸음이 아주 큰 것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때로는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타고난 성별 간 차이점은 있지만, 이 같은 차이점이 한 성별을 폄하하거나 개인으로서의 기회를 제한하는 데 이용돼선 안 된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