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은 아프고 70년대생은 운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by 김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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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글귀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 소크라테스




믿거나 말거나. 약 4천 년 전의 어른들과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 형도 젊은이들을 버릇이 없고 미숙한 존재로 비판했고 젊은이들은 이를 듣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인간은 기성세대에 도전하려는 유전자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70년대생이 운다, 박중근). 신입사원 시절 팀장님의 라떼는 말이야부터 직장 6년 차인 현재 팀장님의 라떼는 말이야까지, 내가 겪은 그들은 라떼 한 잔 사줄 시간 없이 ‘회사(조직)의, 회사(조직)에 의한, 회사(조직)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존중을 받기는커녕 꼰대라는 소리를 들으며 구석에 앉아 몰래 눈물을 훔치는 70년대생이었다.


90년대생인 나는 신입사원 때만 해도 참는 게 능사라고 생각해 화를 몸에 담고 살았다. 부모님의 교육 영향도 크게 작용한 부분 중에 하나일 수 있는데, 엄마나 아빠 두 분 다 참을지 언정 의견이나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친가, 외가 식구들끼리 중요한 논의를 할 때 엄마 아빠의 개인적인 불편함은 내려두고 항상 다른 가족들이 좋은 쪽으로 선택하려 했고, 나에게는 그 선택으로 인한 엄마, 아빠의 내면적인 갈등이 전해져 속상함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땐 다른 가족들은 다 좋아했고, 행복한 식구들을 보며 엄마 아빠는 또 참았을 테니까.


회사라는 조직과 가족이라는 조직의 차이를 연차가 쌓일수록 몸소 느꼈는데, 이윤 창출을 위해 모인 회사에서는 내가 계속 참으려 할수록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연필이 칼로 깎아져 나간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회사는 내가 희생했을 때 가족 간의 관계와 달리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에 더 인색했다.


A1: 일 많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B1: 네.

A2: 이거 수정해서 지금 바로 보내. (메신저로 날아온 업무)

B2: 네. <<요새 업무가 많아서 조금 힘이 드는데>>, 방금 시키신 업무는 언제까지 드리면 될까요? (여기서 <<요새 업무가 많아서 조금 힘이 드는데>>는 두 달 동안 고민하다가 그날 마침 너무 화가 나서 꺼낸 얘기다.)
A3: 그래? (그래, 이 두 글자에서 이해 안 간다는 그의 생각이 느껴진다.) 무슨 일하는데? (팀장님은 내게 무슨 일을 시켰는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B3: a 업무도 있고, b도 있는데 중간에 c가 같이 겹쳐서 있어서요. 세 건 다 급한 업무라서 좀 버거운 느낌입니다.

A4: 그럼 지금 내가 시킨 거 먼저 시간 재면서 해봐. 20분 넘어가면 나한테 말하고. (통제하려 든다. 20분의 제한시간이라니…… 이것은 학교 시험인가?)

B4: 네 알겠습니다.


결국 모든 대화는 B4로 끝난다.


A5: 내가 생각하기엔 네가 지금 바쁠 리가 없는데?

B5: 네…(일 많으면 말하라고 하셔서 말씀 드렸는데…)

A6: 내가 이 업무를 시킨 이유는 네가 관심이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너 공부하라고 시킨 거야. (공부라니, 나 내 공부 내가 알아서 하는데)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업무가 있다면, 왜 업무시간에 하려고 하지? 업무 시간 외 시간에 해야지 네가 성장하는 거야(워라밸을 조건으로 전 직장 대비 절반으로 연봉을 낮춰 지금의 회사를 결정했는데… 앗… 저 이직해야 하는 건가요(이전 글<또 퇴사합니다> 참조)).

B6: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모든 경험은 자산이기 때문에 감사한 건 감사한 거다. 이건 인정!)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모든 대화는 B6의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로 끝난다.


신입사원 때나 지금이나 나는 하루 종일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솔직히 지겹다. 얼마 전에는 팀장이 우리 팀원 중 한 명이랑 나를 비교하는 말을 서슴없이 건넸는데 그 얘기를 듣고 상처가 컸는지 그 주 주말까지도 나는 회복이 되지 않아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나는 90년대생이기 때문에 사회/조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70년대생들의 고충과 힘듦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요새 애들 중에는 정말로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서 우리 아빠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많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봤지만 여전히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회사 내에서의 세대 차이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진심으로 회사를, 서로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조율해나가는 시간을 더 써야 하지 않을까.


행복을 느끼는 일 중 하나가 계획 없이 들린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었는데 그 책이 정말 마음에 들 때고, 그 책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줄 때다. 그래서 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글을 읽으면서 해소했고, 팀 리더나 사수와 서로 어긋날 때, 그래서 내가 상처받은 날에는 그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해왔다. 신기하게도 애니어그램 4번 유형인 나는 힘이 들 때 타인을 과하게 신경 쓰고 타인에게 지나치게 나 자신을 내어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나는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고자 손 대신 책을 내밀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나와 띠동갑인 신입사원이 새로 입사하면서 나는 막내 직원의 꼬리표를 뗐다. 앞으로도 직장에서의 위, 아래 관계에 상처받고 몇 권의 책을 더 살지 모르겠다. 상처에 주저앉아 울기도 하겠지만 지킬 건 지키면서 각자 다른 삶을 존중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지 내가 성장한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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