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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1. 2023

용서, 1995년

잊을 수 없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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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계약직이지만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나는 한참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통장정리를 하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날벼락같은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내 통장의 돈이 누군가에 의해서 수시로 자유롭게 인출되어 있었고 금액도 적게는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까지.. 두 눈이 그 내역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아, 떨리는 음성으로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누구의 소행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은행에서 한 이야기가 더 가관이었다. 


"인출하신 분은 본인이십니다. 본인의 현금카드로 전부 인출이 되어 있네요."

"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전 돈을 인출한 적이 없습니다!"

"고객님 현금카드를 확인해 보세요."라는 말에  지갑 속에서 현금카드를 찾았더니 아뿔싸! 정말 내 현금카드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부랴 부랴 분실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천근만근 내려앉는 것 같던지..내 현금카드를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어디서 분실했을까?

 도무지 모르겠고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일까?

그 달에 날아온 카드명세서를 보니, 아! 이건 정말..나도 모르는 현금서비스로 통장에서 자유롭게 인출된 돈까지 합하니 총 400여만 원.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온몸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카드사에 물어보니 역시 내 카드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둔한 내가 자주자주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이미 수십일이 지난 터라누구의 소행은 둘째치고 그 돈을 돌려받을 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물었고 그중  오빠가 "내가 필요해서 좀 빌렸는데 바로 갚으려고 했는데 못 갚았다.."라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있는 힘껏 분을 토하고 주체가 안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네가 오빠야? 동생이 애써 번 돈을 왜 가져가!!" 

울고 구르고  악을 악을 쓰며 싸우고 큰소리를 질렀다. 도무지 그 상황이 감당이 되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오빠가 도박에 빠져있었다.

도박으로 돈이 궁해지자 동생의 돈을 모르게 훔쳐 간 거였다.


너무 큰돈 갚지를 못하고 연체가 이어지자 이제 카드사 빚독촉하는 부서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독촉 전화가 왔다. 갖가지 생각도 못할 원색적인 욕을 하질 않나, 내가 쓴 게 아니라 했더니 그럼 누가 썼냐, 그런 말 한 두 번 듣냐 빨리 안 갚으면 가만 안 둔다며 심지어 내가 일하는 직장에까지 전화해서 당신 월급 차압할 테니 그리 알아라라고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기를 수십 번. 


나는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울음이 나왔다. 

오빠라는 인간을 정말 가만두고 싶지가 않았다. 욕을 하고, 실컷 때려도 분이 풀리지가 않고 그저 마주치기만 하면 입에선 저주의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악몽 같은 날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돈 400만 원이 네 오빠보다 더 소중하더냐..?'라고 묻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아니요, 400만 원보다 오빠가 더 소중합니다." 

다시

'그 돈 400만 원과 오빠를 바꿀 수 있겠느냐?' 하기에 

"아니요,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정말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울고 발악하고 오빠에게 저주의 말을 내뱉던 나였는데 왜였을까. 눈물까지 펑펑 흘리면서 대답했다. 

 "오빠보다 그 돈이 더 소중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다음 날 은행에 전화해서 대출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근무하는 직장이나 여러 상황으로 마이너스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딱 400만 원 정도만큼의 대출.


다음 날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서류를 만들어 조금 일찍 퇴근해 은행에 서류를 넘겼고 대출을 받을 수가 있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견딜 수가 없는 분노에 떨었는데 놀랍게도 너무나 마음이 편안했다. 이렇게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그 400만 원이라는 빚을 갚는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감사한 것은 계약직이었던 그곳을 그래도 2년 동안이나 더 근무할 수 있었던 덕분에 계약기간이 끝나던 날,

 드디어 400만 원의 빚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물론 오빠에게 그 돈을 전부 돌려받을 순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그때 그 마음속에서 들려오던 소리에 오빠를 용서했던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아 영원히 가족의 연을 끊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지금  오빠와 저는 둘도 없이 다정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용서를 통해 오히려 용서받은 것은 

미워하고 저주했던 나였다.

진심으로 돈보다 오빠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 마음이 마법처럼 스르르 풀렸던 그 순간을 

참으로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용서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이었음을

겸손하게 고백한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또 많이 연약하지만, 

그날의 용서를 통해, 내 마음을 밝혀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 다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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