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색가방 Jan 12. 2022

노력이 당신을 배신한다면

첫 번째 탈락, 입시

내가 학창 시절 때는 ‘10000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흥했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 10000시간이라는 의미다. 10000시간은 온전히 하루 24시간 동안 그 분야에 몰입했을 때, 416일이 걸리고 하루에 8시간 몰입했다고 한다면 1250일이 걸린다. 이러한 10000시간을 쏟아부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노력의 성과에 관한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사라진 지는 꽤 된 이야기다. 서점에 가서 자기 계발서, 에세이를 보면 ‘너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열심히 살지 말라’라는 이야기들이 더 많다. ‘10000시간을 채워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성공해라!’라는 교훈은 어쩌면 한물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따금 서점의 책들을 보며 왜 이렇게 변화했을까를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10000시간이라는 노력에 배신당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제는 전문가로서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원하는 성공이 더 중요한 시대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 된 것이다.

성공의 기준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곳을 떠올리자면,

‘우리나라의 입시 문화’ 일 것이다.



10000시간의 노력, 사실 엄청 귀한 가치다.

그 시간을 버텨온 것, 그 시간을 몰입한 것, 그것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진심 가득 담아 그렇게 10000시간을 노력해왔는데,

배신당한다는 건, 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노력이 배신했을 때의 해답을 우리는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고3 때, 그 감정을 느껴봤다.


이 이야기를 1월에 올리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이 정시 발표 시기이자, 입시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입시에 실패하거나,

탈락한 그 아이들에탈락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만 있다면 이 글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대학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했다.

그런데, 그 입시를 망쳤던 나에게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3년 내내 보았던 모의고사들 중에서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던 점수의 수능 성적표를 손에 들었던 날,

참 암담했다.


나의 망친 입시 과정에 대해 잠시 소개하자면,

나는 3년 동안 논술을 준비해왔었기 때문에,

수시 6개 모두 논술로 지원했다.

그리고 수시 논술에는 수능 최저 등급이 있었다.


나의 수능 날, 나는 한 번도 모의고사에서 받아본 적 없는 등급을 받았고, 수시로 지원한 6개의 대학 모두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논술 시험장에 갔다.

합격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원서 값이 아깝다는 핑계로

모든 논술 시험장에 참석했다.

중간중간 듬성듬성 비어있는 책상들이 있었다.

나 역시 어쩌면 그렇게 책상을 비워두는 편이 맞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입시의 그 과정들, 그 결말을 완벽히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3년 동안 내가 해온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무조건 불합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 논술 문제를 풀었다.

모든 논술 문제에 답안을 꼼꼼하게 채웠다. 그것이 내가 나의 입시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다.

3년 동안의 노력과 그렇게 작별했다.


당연히 모든 수시 전형에서 탈락하고,

나는 정시 전형을 위해 박람회에 방문했다.

코엑스에서 열렸던 박람회에서 대학교 부스를 돌아다니며

예비 일지, 합격 일지, 불합격 일지, 경우의 수들을 상담받았다.

그 경우의 수 중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을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     


그렇게 입시가 모두 끝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쉽게 무너졌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은 재수를 권하셨지만, 그렇다고 재수를 택할 수는 없었다.

재수를 한다고 해서 성공할 보장이 없었고, 또다시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재수를 포기하고,

재수를 하지 않은 1년으로 내가 입시 때문에 미뤄둔 일을 하기로 했다.     

학창 시절 내내 글쓰기 대회에서 종종 상을 타 왔던 것을 시작으로

마음에 품었던 작가라는 꿈은 사실 입시를 핑계 삼아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그동안 ‘대학 가면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입시를 망친 고3 때의 나는 결심했다.


재수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아낀 그 1년이라는 시간은

오롯이 작가가 되는 것에 쓰자고 말이다.     

그때 나는 입시가 아니라 나의 또 다른 목표를 하나 만들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아직도 10000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새로 만든 목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나에게 지표가 되어주었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참 가혹하다.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건, 무조건 성적순이다.

물론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한 노력들을 나는 엄청나게 인정한다.

나도 그 당시에 열심히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말해주고 싶다.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단 하루의 시험 성적만으로

자신의 앞길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참 가혹하다고 말이다.     

지금 스물일곱인 나 역시 나의 앞길을 완벽히 결정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완벽히 결정할까.


어린 나이에 여러 분야로 엄청난 재능을 보여서,

직업적으로 확고한 꿈이 있어서,

공부에 뜻이 있고 재능이 있어서,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솔직히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 안에서, 교육 제도 안에서, 입시는 가혹할 수밖에 없다.

입시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수능을 끝마치고 나오던 날, 참 허무했던 기억이 있다.

날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수능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수능 시험이 끝나고 해는 아직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고작 반나절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가’라는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공부, 정말 중요하다. 학벌,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방법, 학습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는 방법을 익히는 일이 우리가 학생 때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입시가 끝나고 나면 국영수로 평가되지 않은 일들 투성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잘 풀리는 일도 있다.

그러니, 어떠한 상황이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

그 상황을 학습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입시를 준비하는 3년 동안, 그 사실을 잠시 잊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입시에 불합격했다면,

다시 수능을 도전해도 좋고, 새로운 목표를 선정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잠시 무너져 있어도 좋다.     

분명 말하고자 하는 건, 입시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의 고비가 될 수는 있어도, 절대로 결승선은 아니다.

이 사실을 나 역시 탈락하고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저 응원의 한 마디를 보내자면,

나는 무탈하게, 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

.

.


※슬기로운 탈락생활은 월 1회 올라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기로운 탈락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