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시
후진하는 버스
아침 출근 시간 꽉 찬 지옥철에서
공부 좀 해보겠다고 꺼내 든 에이포 용지에 손을 벴다
그 작은 상처가 꽤나 아려서 입에다 넣고 쪽쪽 빨았다
23개월 아이가 된 마냥,
쪽쪽 빨았다
아는 것을 틀리는 일은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8 곱하기 4가 32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24라 외쳤던 날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소나기라도 나를 흠뻑 적셔
온 공기에 습기가 가득하게 했으면 하는 날이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냐고 길거리 노숙자에게 물어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 나도 따라 고개를 저을 수 있게
그렇게 초라하게 사라지고 싶다 하면 사라질 수 있는 아이가 됐으면 했다
23개월 아이처럼 고민이 없이 손끝 발끝의 생경한 감각들만 느껴가며,
뇌의 뉴런들이 앞뒤 관계는 보지 않고 빠르게 시냅스를 거치는 그런 과정,
그 과정의 머물고 싶었다
그런 퇴행,
나쁜 거라 배웠다
앞으로 가지 못한다고
후진하는 버스는 없다고
교통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어느 나라 여행을 해보니,
있던데,
후진하는 버스.
그 후진하던 버스는 한참을 뒤로 가다가 간신히 자신의 길이 나오자,
막혀있던 도로를 뚫어가듯 잔뜩 속도를 내고 가더이다
P.S 본 매거진에 사용되는 사진들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