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전시회

열네 번째 시

by 분홍색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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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전시회


멀리서보니 수많은 꽃을 그려놓은 것이 확실한데

가까이서보니 꽃은 없고 수많은 붓터치만 가득이다


꽃을 그려놓지 않고,

꽃을 상상하게 한,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 화가의 손길을,

충분히 느껴본다


저 뭉쳐있는 물감들이 후둑하고 흘러내리면 어찌하나

하늘 위를 둥둥 떠어다니는 저 연인의 손은 하나인가 둘인가

중력은 저 연인들을 잡는 것을 포기한 모양,

그림을 보고 있는 내 발바닥만 쥐어 잡고 놓지를 않는다


시기심을 동판에 새기던 화가는

사람의 얼굴과 팔을 삭제해버렸다

누군가를 보는 눈,

누군가를 따라가는 다리,

시기심은 그 둘을 닳게 만들지


나이 많은 화가의 화방에 난데없는 방문임에도

니이 많은 화가는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며,

눈가에 자연스런 주름을 그려놓고 나를 반긴다

나에게 청하는 악수,

그 두툼한 손,

다정한 악력,

초대받았다.

오래된 그의 화방으로.



P.S 본 매거진에 사용되는 사진들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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