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열세 번째 시

by 분홍색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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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또 치워야 할 것들이 늘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 손도 대지 못한 것들이 방에 이미 가득이다

오늘도 치워야 할 말들을 뱉고, 지워야 할 단어를 적는다

치열한 후회가 쌓이는 방,

청소부는 간신히 문을 열고 쓰레기 더미에 깔린 더미를 발견한다

합성수지로 만든 팔을 쭉 잡아당겨 꺼낸다

힘없는 전신이 빠져나온다

더미에게 심폐소생술을 한다

더미에게 산소를 부여하고 박동을 강제한다


대강 응급조치는 한 것 같으니 청소, 청소를 한다

청소가 청소부의 일이니까

갇혀있던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 뻑뻑한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가 가득이라 눌러지지도 않을 고물 키보드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

단 한 번도 입지 않았지만 다 헤져 버린 선물 받은 옷은 재활용으로 분류하고,

간밤의 실수가 잔뜩 묻은 누런 이불을 세탁기에 꾹꾹 넣고,

다 먹겠다고 욕심 부리다 남기고 만 라면 면발들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썩은 내가 진동을 하던 양은 냄비를 철수세미로 빡빡 닦는다

머리카락이 잔뜩 있는 방바닥은 걸레로 두 번, 세 번 닦고 나면 청소 끝이다


다시 숨을 불어넣고 심장을 뛰게 한 더미를 그 방 가운데에 두고,

떨리던 눈꺼풀을 열어줬다

더미는 그제야 온전히 자기 힘으로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더미를 향한다

절묘하다

그 각도에 미소 지으며 청소부는 문을 닫고 사라진다



P.S 본 매거진에 사용되는 사진들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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