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눈물, 나는 왜 그때 울었는가

이해와 미움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

by 핑크 바게트

치열한 설계 끝에 ‘베이커 포지션’으로 새 비자를 받았다.

또 2년짜리 클로즈드 워크 퍼밋. 메일 제목 줄이 모니터 위에 떠 있었다.

프린터가 뜨거운 종이를 토해냈고, 형광등이 낮게 윙— 울었다.

머물 자격을 얻었다는 안도와, 같은 구조에 다시 묶였다는 답답함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겹쳤다.

근무를 마치고 동료와 다운타운을 걷던 저녁, 형제에게 메시지가 왔다.


“야.”


우리는 오래, 불편했다.

알림을 밀어내려던 손끝이 멈췄다.

화면 밝기를 올리는 순간 두 번째 메시지가 떴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뭐?—현실이 한 칸 밀렸다.


버스 전광판이 흐릿해지고, 신호등이 초록에서 빨강으로 바뀌는 걸 한 박자 늦게 보았다.

슬픔보다 먼저 든 건 막막함—무엇부터 해야 할지. 곁에서 눈치 보던 동료에게 담담히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대.”


집에 돌아와 사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부고, 내일 저녁 출국, 매니저와 스케줄 조정—항목으로 나눠 짧게. ‘업무 보고’의 문장으로 감정을 가렸다.

보낸 지 1분도 안 돼 전화가 울렸다.

스케줄 얘기겠거니 하고 받았다.


“여보세요.”


목이 잠겼다. 반대편 목소리는 예상보다 떨려 있었다.


“어떡하니… 어떡해… 가게 걱정하지 말고, 잘 보내드리고 와.”


말끝은 거의 울음이었다. 그제야 나도 터졌다.


“저… 어떡해요.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외국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어른’은 많지 않다.

동정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순서를 알려주길 바랐다.


“일단 비행기표부터 빨리 끊고, 가게는 걱정 말고.”


통화는 거기서 끊겼다.

통화가 끝나자 통화 기록 위로 항공권 검색창이 겹쳐 떴다.

절차의 언어가 다시 나를 붙들었다.


거실은 갑자기 넓어졌고,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길게 스며들었다.


다음 날,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인사드렸다.

내가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라고 하자, 그는 “다행”이라고 했다.


그 말엔 두 얼굴이 있었다.

비즈니스가 먼저인 사람의 안도, 그리고 남의 슬픔에 젖는 사람의 눈물.

그는 둘 다였다. 그리고 그 모순까지가 그의 ‘전체’였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작업대의 밀가루 먼지, 반죽의 숨, 오븐 타이머의 짧은 알람이 귓가에서 잔향처럼 맴돌았다.

절차의 언어로 하루를 버티고, 인간의 언어로 밤을 보냈다—그렇게 생각하니 숨이 조금 고르게 들었다.


나는 그를 악으로만 그리고 싶지 않다.

냉정함이 날 다치게 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인도적인 얼굴 또한 분명했다.

사람은 대개 복합적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무조건 이해하거나 용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도 아직 그럴 수 없다. 미워해도 된다.

다만 한 장면으로 사람을 다 그어버리지는 않겠다.

내가 겪은 상처의 그 부분만 겨냥하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그랬을 거야’로 덧씌워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

미움이 길어지면 무너지는 건, 결국 나니까.

그 밤, 출국 대기 게이트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한 문장이 또렷했다.


이해와 미움은, 동시에 가능하다.


긴 글을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멀지 않은 현재형입니다.
아버지의 부고 앞에서 저는 여전히 행복했던 기억, 후회, 원망 사이를 오갑니다.
무엇이 옳은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오늘도 슬퍼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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