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안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손바닥만 했다.
상복의 바스락, 도장 찍는 도탁—소리들만 진하게 남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내 안은 비어 있었다.
행복했던 몇 장면과 후회, 원망이 번갈아 올라왔다.
슬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만 분명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새벽, 공항의 냄새는 여전했다.
금속과 세제, 잠 덜 깬 몸.
수하물 바퀴가 바닥을 긁고, 커다란 유리문이 조용히 열렸다.
장례의 잔향을 가볍게 접어 넣고, 나는 다시 ‘베이커’로 출근했다.
사장님과의 재회는 짧았다.
그는 비즈니스의 목소리로, 나는 역할의 목소리로 인사했다.
서로의 얼굴을 이미 아는 사이—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베이커 포지션은 문서로 확정되어 있었다.
체크리스트, 동선, 온도 기록표.
문제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는 걸, 드디어 알겠다.
경계가 없어서 힘들었다.
경계가 생기자 일은 다시 일처럼 보였다.
반죽이 숨 쉬는 소리를 듣고,
타이머가 울리면 꺼내고,
남는 시간에 도구를 정리한다.
그 단순함은 위로였고 동시에 핑계였다.
포지션의 흔들림, 공정치 않은 환경, 아버지 부고가 남긴 빈자리—그 모든 것을 잠시 보지 않기 위해 나는 루틴을 더 단단히 붙들었다.
해결의 결심은 조금씩 흐려졌고, 여섯 달이 지나갔다.
하지만 새 매니저가 올 때까지, 빈칸은 생겼다.
“잠깐만”이라는 말에 실려 재고 관리가, 발주 확인이, 신규 교육이 슬금슬금 넘어왔다.
명찰은 그대로인데, 메신저의 호출명은 늘었다.
잠깐은 대체로 지금 당장이었고, 도와줘는 흔히 네 일이 되었다.
이번엔 완전히 거절하지 못했다.
전에 배운 ‘이해’가 내 쪽으로 기울었던 걸까,
아니면 부고 이후의 인간적인 장면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새 비자를 받은 몸이 스스로 작아진 탓도 있었겠지.
그리고 잊고 싶었던 마음이 겹쳤다.
나는 침묵했고, 경계선은 조금씩 흐려졌다.
잊기로 택한 여섯 달 끝에서 오후 프렙,
트레이를 어깨 높이에서 내리는 순간 손목이 전기처럼 찌릿했다.
재료통을 바닥으로 옮기다 허리에서 둔한 경고가 올라왔다.
통증은 말보다 정확하다.
내 몸이 먼저 알아챘다—선이 다시 흐려지고 있다고.
과장을 멈추고 기록을 택했다.
오늘의 세 줄.
호출 업무: 발주 검토·스케줄 조정(임시)
통증 지점: 우측 손목 외측, 요추 압통
조치: 고하중 동작 2인 처리, 하역 높이 조정, 대체 동선 메모
다음 날에도 “잠깐만”이 쌓였다.
나는 답장 앞에 한 문장을 붙였다.
“역할 기준 확인 후 가능합니다.”
호의 대신 합의, 감정 대신 절차.
말로 선을 세우고, 몸의 선은 도면으로 옮기기로 했다.
퇴근길, 밀가루 먼지가 손등에 얇게 남아 있었다.
두 번 비누 거품을 문질러도 희미한 자국이 남았다.
오늘의 피로가 씻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오래 들고 다닌 습관이 아직 내 안에 있음을 가리킬 뿐.
내 ‘설계자의 언어’는 제도 앞에서 잠시 이겼다.
그러나 ‘육체의 언어’가 조용히 청구서를 내밀었다.
여섯 달의 침묵, 붙잡아 둔 역할,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그 모든 것을 내 몸이 더는 들 수 없다고 선언하는 듯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병가는 ‘사건’이 아니라 ‘절차’가 되게 하겠다.
아이스팩 시간을 타이머에 저장하고, 통증 기록 표를 메모장 첫 페이지로 옮겼다.
병가 신청에 필요한 근거와 자료를 차분히 쌓았다.
책상 가장자리에 조용히 적는다.
다음 자리를 고르는 기준.
그리고, 내일의 첫 문장.
“명찰은 한 줄이고, 업무는 빈칸이 많았다—그 빈칸을 표로 채운다.”
이 긴 여정 속에서, 제 빈자리를 묵묵히 지켜준 소중한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없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아버지를 위해 조문해 준 그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많이 흔들렸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