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나 사이에서 선을 긋기까지의 기록
첫 잔의 스팀 소리와 마지막 설거지의 물소리 사이에 내 하루가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자주 나를 잊었다.
좋은 직원으로 남는 일과 나를 지키는 일, 둘 다 가능할까.
그 질문의 답을 나는 캐나다에서 두 번의 퇴사에서 배웠다.
나는 늘 가게를 먼저 생각했다.
내 몸보다, 내 삶보다, 내가 일하는 공간의 안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원가를 줄일 방법을 찾고, 손님이 더 만족할 서비스를 고민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사장님이 “고맙다”라고 말하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하며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몰랐다.
뉴질랜드에서 손목이 망가졌을 때도 쉬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오가면서도 “가게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사장님들은 늘 “고맙다”, “믿음직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들이 나를 지탱했다.
그땐 몰랐다. 그 고마움이 칭찬이 아니라, 더 오래 버텨달라는 주문이었음을.
캐나다로 와서도 그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첫 직장은 새로 오픈하는 카페였다.
커피 경력이 가장 많았던 나는 자연스레 ‘중심’이 되었다.
새 메뉴를 개발하고 레시피를 만들며, 퇴근 이후에도 남아 일했다.
내 가게를 열어도 이만큼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물론 모두에게 반가운 존재일 순 없었다.
피곤한 기색과 곁눈질을 알아차리면서도, 매출이 오르고 손님이 늘어나는 게 더 중요했다.
내가 만든 음료가 메뉴판에 오르고, 그 잔을 들고 웃는 얼굴들을 보는 일—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보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몸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엔 늘 있던 통증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서서 일하면 허리가 뻐근했고, 저녁이면 무릎이 욱신거렸고, 손목은 오래전 다친 뒤로 내내 성가셨다.
“바리스타면 그럴 수 있지.” 내심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통증의 결이 달라졌다.
밤에 깨서 손을 주무르지 않으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고, 새벽 첫 잔을 뽑을 때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날이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지장이 생기자 그제야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느 아침, 양말을 신으려 허리를 굽히는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번개처럼 치고 올라왔다.
그 자세 하나를 끝내지 못하고 벽을 짚고 숨을 골랐다.
그제야 ‘이건 그냥 피로가 아니구나’ 싶었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치료를 위해 잠시 쉬게 해달라고 휴무를 신청했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인력이 부족해. 안 돼.”
나는 늘 그들의 요청에 “Yes”였는데, 처음으로 “잠깐 멈추겠다”라고 말한 순간 죄인 같았다.
며칠 뒤, 이상한 하루가 찾아왔다.
어떤 날은 손목이 아픈 게 아니라 아무 감각이 없었다.
손등은 만화 속 고양이 로봇의 손처럼 퉁퉁 부어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감각이 둔해지니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탬퍼와 피처를 번갈아 떨어뜨렸고, 동료들의 만류 끝에 나는 처음으로 조퇴를 했다.
진단은 “허리 디스크 의심, 엄지로 이어지는 손목 신경 부위 염증.”
진단서는 분명했고, 쉬라는 권고도 함께였다.
곧바로 가게에 연락했다.
돌아온 답은 “완전한 휴가는 어렵고, 이미 짜인 스케줄을 소화한 뒤에야 근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쉬라는 의사의 말과 일정을 지키라는 가게의 말 사이에서, 나는 멈춘 채 또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쉬면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떠나기 전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더 오래 남았다.
이상하게도 그때까지도 나는 나를 위한 휴식이 아니라, 일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하는 치료를 고민하고 있었다.
몸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 말을 들어줄 자리는 아직 내 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분위기가 달라진 걸 매니지먼트도 금세 눈치챘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묻지 않던 걸 요구했다.
“지금까지 만든 레시피들, 보내줘.”
요청은 담백했고, 당황한 건 나였다. 잠깐, 내가 예민한가 싶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새 메뉴는 내 포지션이 아니었고, 그냥 좋아서 내 노하우로 자발적으로 만든 것들이라고.
보상은 기대도, 받은 적도 없지만 그건 내 시간의 기록이라 공개는 어렵다고.
“원하면 더 만들 수는 있어요. 다만 공개는 못 해요.”
돌아온 한마디. “여기서 만든 거면, 여기 자산이야.”
짧고 명료했다. 그 말에 내 ‘기꺼이’ 버튼이 조용히 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직원에게 새 계약서가 배포됐다.
‘퇴사 후 9개월 동종 업계 금지’, ‘가게의 모든 레시피 유출 금지’. 조항은 단단했다.
나는 멈칫했다. 저 ‘레시피’에 내 레시피도 포함되는 걸까.
수정 가능 여부를 조심스레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다른 직원들은 아무 문제 없이 사인했는데, 왜 너만 유난이야?”
문장은 짧았고, 불편함은 길어졌다.
내가 쉬면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떠나기 전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더 오래 남았다.
이상하게도 그때까지도 나는 나를 위한 휴식이 아니라, 일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하는 치료를 고민하고 있었다.
몸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 말을 들어줄 자리는 아직 내 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분위기가 달라진 걸 매니지먼트도 금세 눈치챘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묻지 않던 걸 요구했다.
“지금까지 만든 레시피들, 보내줘.”
요청은 담백했고, 당황한 건 나였다. 잠깐, 내가 예민한가 싶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새 메뉴는 내 포지션이 아니었고, 그냥 좋아서 내 노하우로 자발적으로 만든 것들이라고.
보상은 기대도, 받은 적도 없지만 그건 내 시간의 기록이라 공개는 어렵다고.
“원하면 더 만들 수는 있어요. 다만 공개는 못 해요.”
돌아온 한마디. “여기서 만든 거면, 여기 자산이야.”
짧고 명료했다. 그 말에 내 ‘기꺼이’ 버튼이 조용히 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직원에게 새 계약서가 배포됐다.
‘퇴사 후 9개월 동종 업계 금지’, ‘가게의 모든 레시피 유출 금지’. 조항은 단단했다.
나는 멈칫했다. 저 ‘레시피’에 내 레시피도 포함되는 걸까.
수정 가능 여부를 조심스레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다른 직원들은 아무 문제 없이 사인했는데, 왜 너만 유난이야?”
문장은 짧았고, 불편함은 길어졌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갑자기 ‘문제 있는 직원’이 됐다.
이어진 통보는 더 간단했다. “사인할 때까지 출근하지 마.”
그 순간 이상하게 조용했다.
야간의 레시피와 새벽의 컵들이 문장 하나로 가볍게 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알았다. 일터의 속도는 감정보다 빠르고, 문서 한 장은 관계보다 단단하다는 걸.
이곳에서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기꺼웠는지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였다.
서운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대체 가능한 자리에서 대체 불가능한 나를 지키려면—이제는 내가 선을 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