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애의 가장 큰 장벽들

그 무섭다는 문화차이

by 캔디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캐나다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캐나다는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아예 처음부터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다인종 국가로, 2020년대 현재 캐나다의 인종 분포는 백인이 약 70% 정도로 가장 높고, 남아시아인들이 7.1%, 중국인들이 4.7%, 흑인이 4.3% 정도로 분포되어 있다. 이 외 한국인과 일본인 등을 포함한 기타 인종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 2% 내외로 분류되어 있다.


인종의 95%가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온 한국사람들은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캐나다 안에서 캐내디언이랑 사귄다고 하면 높은 확률로 “그러니까 무슨 캐내디언?”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내 남자친구는 조상이 유럽에서 가까운 캐나다 동부로 이주해 자리를 잡은 백인 캐내디언이지만, 주변에 다양한 인종과 사귀는 친구들이 많다. 당장 아시아와 가까운 캐나다 서부로 눈길을 돌리면 BC주에서만 백인 비율은 약 58% 정도로 떨어지고 중국계가 바로 그다음인 10.6%를 차지한다. 인도, 파키스탄등 남아시아계가 9%, 그다음이 필리핀과 한국계로 아시아 인종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https://thedatainsider.com/british-columbia-population-demographics-by-ethnicity/)


가끔 막 캐나다에 온 친구들 중에 생각보다 백인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실망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정신 차려라. 백인만 받는 나라였으면 우리 같은 동양인도 이민이든 워홀이든 여기 와서 못 살았다. 캐나다가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우리도 여기에 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거다.


이 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많으니 나중에 따로 지면을 내어 다시 하겠다. 요지는, 우리 둘 다 국제연애가 처음이었으나 그런 캐나다에서 자란 그는 이미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섞여 사는 것에 익숙하고 열린 자세였다. 그 말인즉슨 한국인이 절대다수인 한국에서만 자란 나와는 정반대였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보통의 국제연애에서 오는 트러블을 많이 줄이면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러 시련이 있었다. 연애 초기 어떤 일들로 부딪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역시 가장 큰 건 식습관이었다. 나는 평소에 양식은 거들떠도 안 보고 한식 외길만 고집해 온 사람이었다. 반면 내 남자친구는 외국문화에 많이 열려있어서 한국식 바비큐를 한번 먹어본 적이 있다. 한국 음식이라곤 평생 살면서 삼겹살 한 번. 그게 전부였다.

한국인 입장에선 경악스럽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내가 친숙한 주변국이 아닌 어디 폴란드나 방글라데시 사람과 만난다고 치자, 내가 여태 그들의 음식을 몇 번이나 먹어봤겠는가. 그 나라 대표음식 먹어봤으면 많이 먹어본 거다.


지독히도 캐나다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그는 아침으로 요거트에 바나나 하나 때려 넣어 먹고 점심은 스킵한 채 일하다가 저녁에 돌아와서는 밤늦게 레토르트 맥 앤 치즈나 피넛버터 샌드위치 (그냥 빵에 피넛버터 한 줄 바른 거)만 먹고 끝내기 일쑤였다.


반면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최소 국과 반찬, 고기를 베이스로 한 끼를 끝내지 않으면 배가 허전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저주받은 한국인 체질이었기에 우리는 연애 초반에 먹는 문제로 골머리를 좀 앓았다. 특히 국이라고는 꾸덕한 스튜정도밖에 먹어보지 않은 그에게 매 끼니를 밥과 같이 국을 먹어야 속이 뜨끈~허니 든든해진다는 감성을 이해시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결국 돌아가면서 하루는 그의 스타일대로 간단한 저녁을, 하루는 내 스타일대로 거창한 5첩 반상을 해 먹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입맛이 한식에 길들여졌다. 당연하지. 누가 쌀밥에 고기 곁들여진 밥상을 싫어한단 말인가. 시도만 해본다면 누구든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낯선 것들은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내가 이걸 좋아할지 말지도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쾌거는 낯선 문화를 적응해 보려는 시도를 했던 그의 몫도 절반이다. 절반은 한식이 맛있는 탓이고.


이제 우리 둘 다 한식 마니아가 되었다. 근데 문제는 둘 중에 한식을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요리하고 살림하는 집에서 자라 당연히 요리는 남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환상의 궁합이지만 문제는 그런 그가 아는 레시피가 스파게티랑 햄버거, 스테이크 따위가 전부라는 점에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소리로 네가 해주는 한식 좀 먹어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그랬더니 다음날 퇴근 후 집에 오자 그가 콘플레이크를 주먹으로 부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너 뭐 해...? 깜짝 놀라 묻자 그는 외국 웹사이트에서 한식 레시피를 찾았다며, 오늘은 본인이 한식을 해줄테니 앉아서 기다리기나 하라고 으스댔다. 잠시 후 그는 콘플레이크를 부수고 고기에 입혀 기름에 튀긴 후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내밀며 ‘돈까스 덮밥’이라고 주장했다. 맛은 돈까스와 천만년쯤 동떨어져 있었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한 후 그에게 백종원 유튜브 채널을 알려주었다. 진정한 한식 레시피를 손에 쥔 그는 이제 불고기부터 김치찌개까지 못하는 게 없다.


두 번째로 부딪혔던 건 마찬가지로 문화적 차이들이었는데, 케이팝을 들으며 자라서 천만영화를 보고 큰 나와 락밴드 음악만 들으며 마찬가지로 서양 영화만 보고 자란 그와 나 사이에는 큰 강이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다행인 점은, 우리 둘 다 새로운 미디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서로가 처음 들어보는 장르의 영화, 소설을 큐레이팅해 주고 주말에는 아침마다 서로 새 음악을 한 곡 씩 주고받고 추천해 주는 게 우리만의 규칙이 되었다. 이 역시 우리 둘 다 낯설고 새로운 장르를 같이 체험하자는 제안에 “싫어, 난 듣던 거 들을래”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에 남들이 많이 궁금해하고 또 어려워하는 의사소통면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영어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날을 잡고 풀어보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미드 영드로 귀가 단련되어 듣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고, 원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편이라 캐나다에 온후 말하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일단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뱉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무슨 상관인가. 우리도 외국인이 와서 젓가락을 찾으며 ‘젓가락 어디야?’ 한다고 해서 못 알아듣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심지어 말다툼을 하는 중에도 바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고 그는 쉬운 말로 다시 한번 설명해 준다. 단 한 번도 서로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결국 모든 어려움은 문화적 차이에서 왔고, 서로 열린 마음만 있다면 모두 극복 가능하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는 만큼 나도 상대방과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서로의 문화를 폄하하거나 이상한 것 취급하지 않으며 기꺼이 존중할 준비만 있다면 얼마나 다른 문화권에서 왔든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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