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해도 권해야 하는 이유

by 핑크단풍

일주일 후면 새해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용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이왕 가는 길 여행 가는 길이라 생각하며 운전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꼭 이맘때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생각나는 추억을 이야기한다.


세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4살 터울인 동생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피아노 학원을 보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배우려야 배울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악기 연주는 하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싶었다.


곧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하면서 떼를 쓰며 어깃장을 부리는 아이들을 달래고 달래서 피아노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이라고는 하지만 살림과 병행하고 있는 가정집에 피아노 두세 대를 놓고 강습하는 곳이었다.

학원에 도착하면 선생님 앞이라 조용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의 생각도 묻지 않고 강제로 데리고 왔냐며 소리쳤다. 아이들의 소란을 그대로 지켜보는 피아노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당황했었다.

"어머 ~ 애들이 왜 이래" 당황한 나를 피아노 선생님은 기다려주셨다.


다행히 피아노 선생님이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 이왕 왔으니 한 번만 해볼래? 네가 재미없다면 더 이상 피아노 치라고 하지 않을게" 라며 설득했다.

피아노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이들의 생떼도 주춤해졌다.


세진이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피아노 세계에 입문하였다.

형을 따라온 태준이도 자연스럽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진이는 엉뚱하게도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 연주에 심취하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고, 같은 곡을 다른 연주자가 연주하는 느낌의 차이를 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 곡은 여기서 연주자가 세게 연주하는데.. 엄마 이거 들어봐, 이 곡은 피아니스트가 약하지. 연주자마다 느낌이 다 달라"

나는 들어도 잘 모르겠는 걸 세진이는 계속 설명을 하였다.

아이가 이렇게 달라지나 싶었다. 신기했다.

나는 세진이가 계속 음악에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잘 몰라도 호응을 해주었다.

" 너 대단하네 어떻게 이런 차이를 발견해? 엄마는 들어도 잘 모르겠는 걸?"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세진이는 답답한 듯 잘 들어보라며 또 음악을 재생시켰다.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 후로 나와 남편은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생겨났다.

세진이가 클래식만 들으려고 해서 차에 타면 무조건 클래식 음악을 틀어야 했다.

한두 시간 듣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장거리 운전에서 대여섯 시간을 피아노 음악만 듣는 것은 위험했다.

졸음방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졸음이 찾아올 정도였다.

운전할 때 졸리면 신나는 댄스음악이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틀어야 하는데, 녹턴이나 모차르트 등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연주만 대여섯 시간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든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2년 정도 세진이는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정도의 재능과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취미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

학원을 그만두고서도 세진이는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구해 피아노를 연습할 줄도 알았고, 지금까지 클래식을 즐겨 들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아이가 싫다고 반항해도 한 번쯤은 권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때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다면 아이의 클래식 음악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할 수 없다.


형을 따라 피아노를 배운 태준이는 뭐 1년도 채 되지 않아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전혀 피아노에 관심을 두지 않아 매일 장난만 친다는 큰 아이의 말을 듣고는 바로 미술 학원으로 옮겼다.

그렇게 학원을 옮긴 둘째는 오히려 미술 학원을 훨씬 더 재미있어했다.


어릴 적 배운 1년 2년의 예체능 학원 경험이 아이에게는 큰 인생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랐는데 청년이 되어 자기 방에서 피아노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 괜히 흐뭇한 기분이 든다.


곧 설날 연휴로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한다.

큰 아이가 일본에 있어 이번 귀향길에 동행하지 못한다.

옛날처럼 클래식 음악을 틀지 않아도 되지만 이번 귀향길에도 역시 남편과 나는 클래식 음악 가득했던 15년 전 그 추억을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함께 하지 못한 세진이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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