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표현, 사랑의 표현
고딩엄빠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아이 엄마가 아이의 돌잔치를 근사하게 해주고 싶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태어나 처음 맞는 아이의 생일을 멋지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남들처럼 돌잔치를 해 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나 또한 첫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썼다.
시댁, 친정식구들은 멀리 부산, 울산에 있었고, 직장은 서울이라 돌잔치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가 고민거리였다. 결국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돌잔치를 하기로 하였고, 양가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다.
돌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나는 남편과 의논하여 몰래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였다.
아이를 1년 동안 밤낮으로 키워주신 친정엄마와 일하는 며느리를 위해 매번 김치며 반찬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시는 시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아이의 1년을 위해 누구보다 마음 쓰며 고생했을 두 어머니들에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두 분께 드릴 작은 선물을 따로 준비했다.
아이의 돌잡이가 끝난 후 사회자가 나와 신랑에게 한 마디씩 하라고 했다.
남편은 오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말로 짧게 끝내고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드디어 내가 준비한 이벤트를 할 순서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짓을 하며 몰래 반지 케이스를 하나씩 챙겼다.
" 1년 동안 저는 직장 다니는 핑계로 세진이 엄마로서 별로 한 게 없어요. 저희 친정어머니가 밤잠 설쳐가며 세진이를 너무 예쁘게 잘 키워주셨고요, 또 저희 시어머니는 며느리 고생한다고 늘 김치며 맛있는 반찬을 보내주어 저희 집 냉장고를 채워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저희 두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엄마, 어머니 잠깐 앞으로 나와주시겠어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시어머니는 앞으로 나왔다.
손님들도 어리둥절한 표정과 기대의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남편은 친정엄마에게, 나는 시어머니에게 준비한 반지를 손에 끼어드렸다. 그리고 안아드렸다.
안아드리면서 고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였다.
어머니도 놀라워하면서도 감동받으신 듯 우리를 안아주셨다. 두 분의 얼굴에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뿌듯했다. 몰래 준비한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돌잔치가 끝난 후 회사에서도, 이모나 다른 친적들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돌잔치에서 처음 본 광경이었어"
"내가 가 본 돌잔치 중에서 제일 감동적이었어".
"부모님께 반지 끼어드린 거 너무 보기 좋더라."
"나중에 나도 돌잔치 때 이거 따라 해 봐야 되겠어."
돌잔치 때 받은 반지를 두 분 어머니는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
손가락이 붓고 살이 쪄서 이제 그 반지가 손에 맞지 않아 서랍 속에만 있지만 가끔 그 반지를 보면서 그때를 생각하신다고 한다.
가족이라고 내 맘 다 알겠지 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의 표현은 결국 나에게로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돌잔치 이후 이 이벤트로 가장 혜택을 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