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 사이에 놓인 1000피스의 시간

by 핑크단풍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비슷한 순간을 겪는다. 스마트폰 좀 그만하라고 말하는 일, 게임 시간을 줄이자고 설득하는 일, 그 과정에서 괜스레 언성을 높이게 되는 일.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게임중독,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내 아이의 생활도 내 마음대로 완전히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아이의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은 크지만, 정작 명확한 기준 없이 휘둘리다 보면 결국 “잔소리하는 엄마”만 남는다. 요즘 아이들의 스마트폰·게임 사용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인 고민거리이기도 하지만, 집 안에서의 갈등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 같다.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제어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늘 제제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때도 허다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엄마는 늘 제멋대로인 엄마일 때가 많다.


사실 나도 아이들의 게임 문제로 고민을 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인정했듯이 다른 엄마들에 비해 큰 제제를 한편은 아니었다.

아이의 컴퓨터 전원을 갑자기 꺼버린다든지, 억지로 금지시키는 방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은 중간에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와의 신뢰가 깨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시간 조절은 아이 스스로 정하게 했다.

“이번 판만 할게요.” “몇 시까지 할게요.” 아이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게임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방학은 달랐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게임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났고, 나도 점점 불안해졌다. “그만하고 책 좀 읽어.” “공부도 좀 해.” 이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안 먹힌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몰려왔다.

아이가 게임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활동.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성취감이 남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1000피스 퍼즐이었다.

아이들에게 제안을 하니 흥미를 보였다. 바로 둘째와 1000피스 퍼즐의 그림을 고르고 액자와 함께 주문했다.

소파테이블을 아이들 방으로 옮기고 1000피스 퍼즐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퍼즐을 펼쳐 놓고 나니 아이는 의외로 금방 흥미를 보였다.

오며 가며 한 조각씩 맞추다가 점점 더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와, 너 정말 잘한다. 엄마는 어려운데…”라고 말하면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엄마는 색깔 좀 분류해 주세요.”라고 역할을 정해 줬다.

그 순간이 참 따뜻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엄마를 자신만의 팀원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일주일쯤 지나자 멋진 퍼즐 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 작품을 현관에 걸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예쁘게 정렬된 퍼즐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퍼즐을 볼 때마다 함께 한 시간이 떠올라 뿌듯했다.

퍼즐을 맞추면서 게임 시간이 줄어든 것도 좋았지만, 아이가 집중하는 모습, 차분해지면서 표정조차 부드러워지는 것이 더 놀라웠다. 무엇보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손을 움직이며 조용히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아이는 곧바로 또 다른 1000피스를 하고 싶다며 졸랐다.

두 번째는 엄마의 사심이 잔뜩 들어간 해바라기 풍경을 골랐는데, 노란색 조각이 너무 많아 쉽지 않았다.

퍼즐을 오래 들여다보면 눈이 아플 만큼 어려웠지만,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현관문을 열면 2개의 퍼즐 액자가 걸려있다.

아이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 그 고요한 순간들이 그대로 액자 속에 담겨 있다.

그 뒤로 우리는 네 작품을 더 만들었다. 계산해 보니 거의 6000피스였다.

우리 집 벽곳곳에 걸린 퍼즐 액자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아이와 내가 함께 쌓아 올린 시간의 기록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작은 손짓, 퍼즐을 맞추며 나누던 짧은 대화,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순간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라, 공부해라, 게임 그만해라 하고 다그치기보다, 아이와 함께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려 했던 그 선택이 나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잔소리로는 닫힌 마음을 열 수 없지만, 함께하는 경험은 조금씩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에 고민하고 있다면, 해결책을 규제에서만 찾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른 세계를 함께 열어주는 것, 엄마와 아이가 함께 몰입할 만한 활동을 찾는 것. 그 작은 시도가 아이를, 그리고 엄마 자신을 더 편안하게 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 남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 그 시간이 결국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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