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잠깐만 쉬자

by 핑크단풍

큰아이가 일곱 살이던 해,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냈다.
유치원 친구들 대부분이 다닌다는 이유, 맞벌이였기에 아이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 그리고 ‘어릴 때부터 영어는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흔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아이는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몇 번을 돌려보곤 해서 영어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영어 유치원은 아니더라도 원어민 선생님이 있고,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한다는 말에 안심도 되었다.



아이는 싫은 내색 없이 곧잘 다니는 것 같아 직장맘으로서 뿌듯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유치원 가방을 정리하다가 영어학원에서 보낸 봉투를 발견했다.

아이의 학원 생활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과 다음 달 학원비 청구서가 동봉된 봉투였다.

학원 가방이 아닌 유치원 가방에서 봉투가 나온 것이 의아해 아이에게 물었다.


“진아, 이 봉투가 왜 여기 있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이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삼키듯이 말했다.
“엄마… 다음 달 학원비, 안 내면 안 돼요?”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의 대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학원이 재미없어?”라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다음 날, 아이 몰래 영어 학원에 들려 수업을 지켜보았다.
활동이 활발하게 오가는 교실 한쪽에서 우리 아이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대려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수업 참여는 소극적이지만 테스트를 하면 다 알고 있다”라고 했다.
그게 뭔 말인가 싶었다. 내가 원한 모습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 아이는 원래 말수가 적고, 새로운 상황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아이였다.

집에서도 말이 별로 없었고, TV도 거의 말이 없는 바둑 TV를 보던 아이였다.
한국말도 크게 하지 않던 애에게 영어로 말하라고 했으니…
그건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내 욕심이었다.


“진아, 내일부터 학원 안 가도 돼. 잠깐 영어 학원은 쉬어가자."
아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봉투를 숨겼을까. 마음이 저릿했다.


그 후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 다시 영어를 시작했다.
늦은 만큼 머리도 더 크고 마음도 단단해져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찾아갔다.

어릴 때처럼 영어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어릴 적 영어를 힘들어하던 아이는 이제 일본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면서,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부모가 할 일은 그저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속도를 존중해 주는 것 아닐까.

요즘도 많은 엄마들이 동네 엄마들의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영어는 빨리 시작해야 해." “이제는 늦으면 따라가기 힘들어.”

그 말들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에게’도 옳은 말인가?
그 질문은 결국 부모인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아이의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빨리 걷고, 누군가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더 깊이 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교가 아니라 동행이다.

남들보다 늦어도,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휘둘리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우리 아이의 특성대로 천천히 걸어가자.

그 길 끝에서 아이는 결국, 자기만의 힘으로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난다.
부모는 그 여정을 지켜보며 다만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힘들면 잠깐 쉬어도 괜찮아. 너의 속도로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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