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은 둘째가 짐 보따리와 함께 배구공 하나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 입학 후 배구 동아리를 한 아들은 배구의 매력에 푹 빠져 있고, 주말마다 배구를 하기 위해 학교를 가곤 한다.
그런 아들이 집에서 나를 파트너 삼아 '배구 교실'을 열었다. 사실 배구를 가르쳐 준 다기보다는 본인이 한시라도 공을 손에서 놓기 싫어 나를 이용하는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그 덕에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나도 기꺼이 아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준다.
" 엄마, 팔을 더 곧게 펴고... 그렇지! 잘하는걸?"
아들은 리시브와 토스를 가르쳐 주면서 칭찬 섞인 추임새도 잊지 않았다.
며칠째 반복하다 보니 제법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뿌듯하면서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배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학창 시절, 나는 말 그대로 '운동치'였다.
특히 둥글둥글 둥근 공은 유독 나를 멀리했다. 수행 평가로 배구나 탁구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최하점을 벗어나지 못했고, 체육 시간은 늘 피하고 싶은 숙제 같았다.
그랬던 내가 쉰이 넘는 나이에 아들에게 ' 잘하네'라는 말을 들으며 공을 받아내고 있다니, 참 기분 좋은 아이러니다.
돌이켜 보면 몸치였던 나를 움직이게 한 건 언제나 두 아들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들의 엄마로 살기 위해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축구할 때 제대로 공을 받아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 줌마렐라 축구단에 입단하여 프로 축구 선수에게 축구를 배웠고( 대회도 참여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눈을 맞추려 서슴없이 캐치볼을 했다.
탁구와 수영, 골프 역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된 것들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세계에 기꺼이 발을 들이는 일인 것 같다.
아들이 배구를 시작하니 내 시선도 자연스레 배구로 향했다. 얼마 전 종영한 김연경 감독의 언더독스 배구 프로그램을 챙겨보면서 배구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학창 시절의 체육이 그토록 재미없고 어려웠던 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평가 때문이라는 걸 이제 깨닫는다.
지금 아들과 마주서서 하는 배구는 점수가 없다. 그저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공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마음을 잇는 '놀이' 일뿐이다.
놀이로 배우는 운동은 이토록 달콤하고 즐거운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들의 방학 기간 동안 우리 집에서는 매일 배구공 튀기는 소리가 날 것이다.
아들에게 배우는 두 번째 체육 시간 덕분에 나의 겨울은 공처럼 탄력 있게 채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