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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Dec 22. 2017

범생이의 굴레

초,중,고,대학, 16년을 범생이로 산다는 것.

내가 아홉 살 때인가, 몸집보다 큰 학원 가방을 메고 엄마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이웃집 아저씨께서 내게 물어보셨다.


"얘, 넌 학원을 몇 개나 다니니?"


"음... 국어, 수학, 영어, 미술, 피아노, 수영, 글쓰기... 7개요!"


"이렇게 어린데 벌써 그렇게 학원을 많이 다녀?"


"네! 제가 엄마한테 시켜달라고 졸라서 하는 거예요”


라며 고사리 같은 손가락 7개를 자랑스럽게 들었다는 엄마의 증언.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중학교 3학년 때 내일까지 생전 처음 보는 영어 단어 500개를 외워오라던 학원 선생님의 숙제를 하던 날이다.


내가 있던 학원반의 분위기는 살벌 그 자체였다. 내가 살던 구에 있는 대부분 중학교의 전교 1~5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만 모아놓은 반이라고 하면 대충 짐작이 가려나.  


점심 급식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영어 단어를 외워 시험을 봤는데 500개 중 딱 4개를 틀렸다. 그리고 틀린 개수대로 4대를 30cm 자로 맞고 나서 뒷자리 친구가 100대쯤 맞기 시작했을 때 든 생각.


'다 맞출 수 있었는데 이걸 왜 틀렸지 멍청하게.......'




나는 남들보다 뭐든지 잘하고 인정받고 싶었기에 스스로 범생이가 됐다. 강요도 강압도 없었다.


그리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장장 12년에 걸친 기나긴 입시가 끝나고 나는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명문대에 합격했다.


내 이름과 대학교가 적힌 플래카드가 고등학교 입구에 달리던 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우리 학교는 아니지만, 연초에 어디에서나 보이는 친숙한 플래카드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범생이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학점, 동아리, 교환학생, 여행, 연애, 인턴 그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뭐든 열심히 했다.


대학교 졸업식 날엔 우등 졸업생 명단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렸다.


'우등 졸업'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크리스탈 상패가 왜 이렇게 무겁냐던 엄마, 아빠의 웃음이 곧 내 기쁨이었던 날이었다.




범생이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도 간단한 일이었다.


선생님,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남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 모두가 선망하는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 그 이름의 후광을 내 이름에 묻혀오는 것.


그렇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정말 열심히 산 20대로서 갖춰야 할 모든 타이틀을 갖춘 것만 같았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벌과 성적, 그리고 화려한 회사 이름들로 수놓은 이력서까지. 이젠 더 바랄게 없다고 생각한 그 찰나.


24년 인생 처음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닥쳤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똑같은 대학, 똑같은 전공이다. 이젠 공부를 업으로 삼아야 할 박사 유학도 생각 중이(였었)다.


내 주위 환경은 빛나는 대학 졸업장을 받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 삶이 모든 빛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도저히 못 견딜 세 가지만 말하라면,


1. 벌레

2. 목적이 없는 것

3. 목적이 없는 나 자신


2번과 3번을 섞어놓은 늪이라니, 완벽한 콤보다. 


대학 졸업이라는 목표까지는 전력질주를 했는데, 이젠 어떡하지? 이제 그럭저럭 살다가 은퇴와 죽음까지 이대로 직행인가?


대학원 때려치워? 이게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맞나? 회사는 가기 싫어. 혹시 내가 말로만 듣던 사회 부적응자? 그래도 선배들이 얘기하는 지옥 같은 회사보다는 여기가 덜 지옥 같겠지. 근데 논문은 왜 이렇게 글자가 많고 읽히지가 않지. 나 난독증인가 봐.  


세 달째 생각은 이렇게 꼬리물기 중이다.




대학원에서 짧지만 깊은 인연으로 소개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친구라 하기엔 나보다 한참 위의 언니 J.

 

언니는 내 한탄을 듣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넌 언제 제일 행복했어? 뭘 할 때 가장 즐거웠어?”


누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질문만 들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순간 숨이 멎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운을 뗐다.


"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장을 했었거든요, 제가 쓴 글을 남들이 읽어줄 때,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 가만히 앉아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 눈을 바라볼 때 그렇게 설레고 좋았어요. "


"방금 너 얘기하는데 눈이 갑자기 막 반짝였다? 나 너한테서 그런 표정 처음 봐."


왈칵-눈물이 쏟아졌다.




어차피 끝이 보이는 길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그 누구에게도 정해진 길이 없다. 내가 또래보다 잘 맞춰오던 정답도 없다.


이미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단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찾아라, 인생에 정답은 없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 고 외쳤다.


대학 졸업이라는 24년 범생이 여정의 끝에서


왜 딱 한 번쯤은, '내가 공부 말고 뭘 좋아하지?'라는 질문을 왜 안 해봤을까.


왜 딱 한 번쯤은, 내키는대로 딴 짓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내가 지금보다는 덜 막막했을까.




나 같이 범생이의 굴레에 갇혀있는 이들은 한 둘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같이 졸업한 친구들 중에도 오랜 노력 끝에 결국 남는 건 이것뿐이냐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배부른 소리라고 해도 좋다. 나 역시 아직 헤매며 고민하는 처지라 조언이라 꺼낼 말도 없고, 오히려 응원이 절실한 상태지만-


여기, 대학 졸업이라는 여정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온 동료 범생이들에게 지금은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괴감에 빠져있을 모든 범생이들에게 힘내자고 말해주고 싶다.


End of the trail 그 뒷면엔 분명, Beginning of the trail이라는 푯말이 적혀있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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