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우리는 주말이면 '도전골든벨'을 즐겨봤다. 마치 참가자인 듯 led패드까지 하나씩 마련해 답을 적은 후 머리 위로 번쩍 들며 답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그 과정을 참 좋아했다. 그런 모습이 기특해 한 문제 맞힐 때마다 5백 원씩 주고 마지막 골든벨 문제를 맞히면 5천 원인가 만원인가를 주기하니 두 녀석 모두 눈을 반짝이며 열을 내는 모습이 귀여웠다.
과학책도 역사책도 즐겨 읽던 은찬이는 앞쪽 문제들을 제법 잘 맞혀 매주 용돈을 두둑이 챙겼다. 그날도 앞문제를 몇 개 맞추고 마지막 문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어려운 골든벨문제를 맞힐 리 없으니 그저 듣고 있었다. 상대성이론이 어쩌고 시공간이 어쩌고... 역시 어른에게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은찬이가 아! 소리를 내지르더니 무언가를 적었다. '사건의 지평선'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갸우뚱하고 있는데 잠시 후 "정답은.....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정답이 발표되었다. 정답이었다.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고 나와 남편은 적잖게 놀랐다. "너... 어떻게 알았어?" "과학동아에 나왔어요. 화성탐사선이 보낸 사진얘기에서..." 하면서 잡지를 들고 와 단박에 펼쳐 보여준다. 정말 있었다. 그 깨알만 한 글씨중에 있었다.
친구들은 만화가 잔뜩 있는 어린이과학동아를 좋아했지만 이 녀석은 그냥 과학동아를 좋아했다. 나는 사주기만 했지 본 적이 없어 모르겠고 병원에 들고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너 벌써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어? 이해가 돼?" 묻곤 했는데 그럴 때 으쓱하는 게 좋아서 읽는척하는 거라 생각했다.^^;
요즘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을 들을 때면 그때생각에 피식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울 아들 천재인 줄 알았던 그때 생각이 나서...
그냥... 아이의 남다른 책장을 보다가... 철 지난 과학동아를 보다가 옛날생각에 잠겨 써본다.. 자랑글... 울아들 이렇게 똑똑했다는 자랑글... 저 의학서적들도 맨날 읽고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