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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진단을 받던 날

by 이보연

일주일 전쯤부터 무릎이 자꾸 아프다고 했다. 이맘때 아이들 흔하게 겪는 성장통이겠거니 하여 마사지를 조금 해주고 넘겼는데 이틀 전쯤부터 다리를 절다시피 한다. 유치원에서 계단을 못 오를 정도라 선생님이 업어주셨단다. 성장통이겠지만 그래도 의사가 확실하게 말해주는 걸 들어야 맘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찾은 동네 정형외과에서 여러 검사를 하더니 이름도 생소한 '오스굿 병'이라는 진단을 해주었다.


"너 뛰어노는 거 좋아하는구나?"

"아니요. 얘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고 말로 노는 걸 좋아하는데요?"


흔하지 않은 병이고 운동선수들이나 가끔 걸리는 병이라고 했다. 희수가 운동을 즐겨하는 애도 아니고 그다지 유난히 노는 애도 아닌데 무릎을 써봐야 얼마나 쓴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당분간 해열진통제를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그다지 차도가 없었고 에너자이저 같던 아이는 쉬 피곤해했다. 동네에서 자주 보던 이웃이

"희수 얼굴이 오늘따라 어디 아픈 애처럼 유난히 하얀데!"

걱정을 내비쳤지만

"원래 하얗잖아~ 겨울 되면 더 하얘지더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2014.11.12. 수요일.

9시가 넘어도 책 한권만 더 읽으면 안 되냐고 조르느라 한참 후에야 잠들던 아이는 8시도 안 되어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잘 자는가 싶더니 밤 11시쯤 무릎이 너무 아프다고 울며 깼다.

'무릎 아픈 걸로 응급실 가기는 애매한데...'

아이의 얼굴을 보니 눈가에 붉은 반점들이 올라와 있다. 뭔가 이상해 친정엄마를 호출하고 아이를 택시에 태워 응급실로 향했다. 밤 11시 45분쯤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수속하고 기다리다가 인턴을 만난 건 12시를 넘겨 13일..

"무릎이 아파 정형외과에서 오스굿 병이라고 진단받았었어요. 진통제만 먹고 있었는데 자다가 깨서 울 정도로 무릎을 아파해서요. 그리고 눈가에 붉은 반점들도 보여요. 낮까지만 해도 없었거든요."

말하고도 한참 동안 아무 조치를 받지 못하다가 또 다른 의사 선생님을 만나 같은 말을 하고 나서야 겨우 엑스레이를 찍으러 갈 수 있었다.

평소 엄살 부리는 법이 없던 아이는 무릎이 아프다고 계속 흐느꼈다. 보통 응급실이 그러하듯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무릎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고 그러고도 시간이 꽤 흐른 후에야 겨우 혈액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채혈을 하던 간호사가

"어? 얼굴에 핏줄이 다 터졌네?"

하기에

"아 이게 핏줄이 터진 거예요?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랬어요."

라고 말하며 안도했다.

혹시 전염병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두 시간 후쯤 나온다고 했고 그렇게 또 간이의자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 시간 조금 지났을까... 갑자기 인턴이 와서 일단 수납을 하고 오라고 했다. 건네받은 서류를 들고 수납창구에 가니 직원이 서류를 받아 들고 의아해하며 묻는다.

"특진 신청하셨어요?"

"아니요."

"어? 그런데 왜 박준은 교수님으로 돼있지?"

하며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며 얼른 수납처리를 해준다.

수납을 마치자마자 진료실에 나 혼자 불려 들어갔다. 아까 선생님과 다른 여자 의사 선생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혈액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적혈구 수치에 이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여기 보시면 백혈구 수치도 많이 이상합니다."

라는 첫마디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병명을 직감하며 미친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떨리는 손에 힘을 꽉 주어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내가 예감한 병명을 말해주었다.


"백혈병인 것 같습니다."


아직 확진은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아이 옆에 돌아와 한참을 울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미국에 출장 가있는 신랑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결정해야 했다. 확진이라면 부르는 게 당연하지만 혹시 오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민했다. 30분쯤 고민하다가 신랑에게 연락했다.


"지금...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어?"


그 후로도 아침이 될 때까지 여러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병명과 대략적인 예후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이 병은 한번 치료를 시작하면 병원을 옮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바로 병원을 결정하라고 했다.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지만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렸다.

그 사이 아이는 급하게 혈소판 수혈을 받았고, 마스크가 씌워졌고, 진통제를 맞았지만 여전히 무릎을 매우 심하게 아파했다.

그리고 신랑의 연락으로 어머님, 아버님이 달려오셨다. 곧 친정아빠까지 도착했는데 양가 부모님들의 대화는 이미 초상집에 온 듯해서 정신이 더 혼미해졌다.


이른 아침... 드디어 담당 교수님을 볼 수 있었다. 무릎을 잡고 엉엉 울고 있는 아이를 보시더니

"골페인이 진짜 아픈 거야. 선생님이 금방 안 아프게 해 줄게."

라며 당장 모르핀을 놔주라고 지시하셨고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금방 괜찮아지겠지만 일단 지금은 정말 아플 테니 마약성 진통제를 좀 쓰자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대략적인 혈액수치를 봐서는 아마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일 겁니다. 여섯 살이면 나이로도 표준 위험군이니 치료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완치율도 80프로 이상입니다. 요즘은 85프로까지 보기도 해요."


라고 설명하셨다. 무언가 더 얘기하셨지만 '80프로 이상'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날... 그 순간이 내 생에 최고로 슬픈 날이었고 또 최고의 희망을 본 날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교수님은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들은 안 아프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며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안 아프게 해 줄게~"

라는 말을 자주 하시고 기운 없이 누워있는 아이의 침상을 손수 일으켜 세워 주기도 하셨기에 아이도 나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80프로를 100프로로 만들어 주시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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