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입니다.

진단 후 첫 한 달

by 이보연

어떤 병을 진단받게 되면 한 번쯤 오진이었으면 바라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의료 쇼핑'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어디가 아프면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본다고 들었건만 정작 희수가 걸린 혈액암, 그중에서도 급성 백혈병은 그럴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진행속도가 워낙 빨라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직 확진을 받은 것도 아닌데 바로 치료를 해야 한다니... 그 치료가 항암치료라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래야 한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 여러 서류들에 사인을 했다. 대부분 동의서였다. 내 아이의 엉덩이뼈에 굵은 바늘을 넣어 골수와 뼈를 채취한다는 동의서, 등뼈에 바늘을 찔러 척수액을 채취한다는 동의서, 심지어 가슴에 히크만이라는 관을 연결한다는 동의서까지... 모두 치료와 진단에 필요한 것이라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책임회피를 위한 강요로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이 모두 싸인을 했다. 그 후 아이를 재워 침대째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수많은 검사를 했고 혈관조영실에 들어가 '히크만카테터'라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관을 한쪽 가슴에 달고 나왔다. 불과 반나절만에 진행된 일이었다.


통증으로 끙끙대던 아이는 오후 늦게야 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6층 서병동 40호실.

앞으로 한 달 동안 머물 곳이고 그 후로도 2년 넘는 치료기간 동안 드나들 곳이라고 했다. 소아암 병동이 있는 서울의 큰 병원들과는 달랐지만 이곳에도 소아병동 한쪽에 소아암 아이들만 드나들 수 있는 6인 병실이 두 칸 있었다.


병실로 들어서니 우리가 들어갈 한자리만 빼고 꽉 차 있었다.

"아이고, 신환이구나. 안녕! "

여기저기서 반기는 소리들이 들렸다.

'반가울 일이야?'

아직도 눈이 벌개서 들어선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운이 좋게 창가 자리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해가 잘 드는 창가 쪽 자리가 명당이었고, 엄마들에겐 등을 기대앉을 수 있는 벽 쪽 자리가 명당이었다. 그 해 잘 드는 창가 쪽 자리에서 커튼을 굳게 닫고 앉았다. 아직 병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 낯선 환경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보호자들이 번갈아 커튼을 빼꼼 열고 종이컵에 담은 과자 한 컵씩을 건네거나 아이에 대해 물었지만 길게 얘기하지 않고 커튼을 더 당겨 닫았다.


아까 가슴에 심고 온 관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한다고 했다. 빈크리스틴, mtx... 하나같이 어려운 이름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항암제는 독약이라는데...

'내 아이 몸속에 앞으로 독약을 2년 넘게 죽지 않을 만큼 들이부어야 하는 거구나.'

그렇게 이해되었다. 치료 목적으로 스테로이드를 한 달간 먹을 거고 예방차원으로 항생제를 두 종류나 맞는다.

'어릴 때부터 감기 걸릴 때면 항생제 덜 먹여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는데... 예방차원으로 저렇게 때려 부을 줄이야.'

허탈했다.

하긴... 항암제를 들이붓는 판에 항생제가 별건가...


항암제가 들어가고 몇 시간 후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시간이 왔다. 백혈병. 85프로. 항암.... 수많은 말도 안 되는 단어들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뒤늦게 내려앉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 아들... 내 새끼... 죽으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밤새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진이 시작되었다. 레지던트 2년 차, 3년 차 선생님들이 차례로 와서 새벽에 했던 피검사 결과를 설명해주면 곧 교수님이 오셨다. 아이 상태를 들여다보고 필요한 설명이나 처방을 해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 회진을 온 교수님은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는

"여기 사람들이랑 친해져야 돼요. 다 비슷한 사람들이니까 배울게 많을 거예요."

하고 다른 보호자들을 소개해 주며 옆 침상 아이와 같은 병명이니 많이 물어보고 잘 지내라고 하셨다. 나중에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지만 그때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관해(몸에서 암세포가 5% 미만으로 사라짐) 상태가 될 때까지 1주일에 한번 정도 항암제를 투약하고 검사로 과정을 확인하는데 그 스케줄이 4주여서 보통 4주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항암주사를 맞을 때면 욱욱 토하기도 하고 밥맛이 떨어졌다가도 약기운이 빠지면 이내 먹을 것을 찾았다. 희수는 스테로이드 때문에 오히려 입맛이 좋아져서 병원밥마저 맛있다며 잘도 먹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모든 음식을 스텐그릇에 담아 고온에서 한번 더 쪄주는 멸균밥이 나오는데 그마저도 잘 먹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 사이 신랑이 미국에서 달려왔다. 비행기가 없어 이리저리 경유해 힘들게 왔다고 했다. 신랑에게 잠시 아이를 맡겨두고 집에 다녀왔다. 입원은 생각도 않고 온 병원인데다가 아이 옆에 붙어있느라 세수 안 한 것도 3일째가 되니 꼴이 말이 아니라 집에 가서 좀 씻고 싶었다. 병원에서 아이만 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집으로 돌아와 둘째를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사온지 두 달도 안된 예쁘게 꾸민 우리 집... 그 집에 오지 못하는 큰아이도, 그 집에서 영문도 모른 채 오빠만 기다리는 둘째도, 너무 안되고 불쌍했다. 망나니였던 둘째가 며칠 사이 너무도 의젓해졌다.


급하게 씻고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몇 개 챙겨 병원으로 돌아왔다. 엄마 찾으며 불안해했다던 아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게임을 한다. 웬만해서 져주지 않는 나지만 이날은 그냥 져줬다.


진단받고 3일 후는 딸의 다섯 살 생일이었다. 다섯 살이라 봐야 고작 세돌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딸... 엄마랑 오빠도 없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생일 축하도 못 받을 텐데 아침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생일인데 챙겨주려고 노력했던 아이 아빠가

"생일인데 아침으로 뭐해줄까?"

물으니 피카츄 핫케익을 해 달랬단다. 얼마 전 여행 갔다가 조식으로 먹었던 예쁜 핫케익을 기대했을 텐데 아빠표 핫케익은... 그 노력에 마냥 속상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딸에게 전화해서

"내년 생일에는 파티 두 번 해줄게!"

약속했다.


각종 검사들과 항암주사를 맞는 것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2주가 지났다.

첫 검사 결과도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B세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입니다. 안 좋은 유전자도 없고 나이나 수치상 표준 위험군이니 지금 스케줄대로 2년 6개월 진행하면 치료종결입니다."

설명해주는 의사 선생님께 가장 먼저 물은 것이

"그러면 학교는 갈 수 있나요?"

였다. 왜였을까... 홈스쿨도 생각해 봤을 만큼 유치원도 학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자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과정인 '학교'에 꼭 보내고 싶은 욕심이 들어 여러 선생님들께 재차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그럼요! 지금 여섯 살이니까 학교는 당연히 갈 수 있죠."

단호하게 얘기해 주셨는데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하루 스케쥴을 마치고 잠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가 또 있을까...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수치 올리겠다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코피 안나려 젖은 수건을 머리맡에 걸어두고 스스로 자기 몸을 챙기는 여섯 살 아이... 그 힘든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아프면 인상 쓰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정도일 뿐 어른보다 잘 참고 잘 견디고 있는 아이...

"넌 정말 큰 인물이 될 거야. '백혈병을 극복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큰 인물..."

잠든 아이 귓가에 속삭인다.


3주 하고 이틀 만에 첫 퇴원을 했다. 원래 4주 스케줄이지만 아이가 잘 치료되고 있고 수치도 괜찮아서 예상보다 이른 퇴원을 하게되었다. 아이는 마냥 신났다. 아이뿐 아니라 엄마 아빠도 동생도 이산가족 만난 듯 들떴다. 워낙에도 사이가 좋던 남매는 그동안 못 봤던 그리움으로 둘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죙일 손 꼭 잡고 꽁냥꽁냥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와중에 행복했다. 컨디션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밥은 잘 먹었다. 그동안 병원이어서 못 먹었던 음식들을 실컷 해 먹였다. 곧 또 입원할 테니 맘껏 먹여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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