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삶의 시작

아픈 아이의 엄마

by 이보연

첫 퇴원의 기쁨도 잠시... 다음날이 되자 '남들의'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신랑은 출근을 하고 다섯 살 둘째는 유치원에 간다.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인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도 그 가운데에 있었는데 이제 병원도 일상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다.


희수는 잠시 집에 두고 뛰어나와 둘째 아이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버스에 앉아 손 흔드는 둘째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한 3월부터 희수는 동생 손을 꼭 잡고 버스에 올라 동생을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는 멋진 오빠였다. 유치원에 도착하면 다시 손 잡고 교실까지 넣어 주고서야 자기 반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사이좋던 남매였는데 갑자기 혼자 다녀야 하는 둘째 맘은 어땠을까... 동시에, 이런 평범한 모든 일상에서 벗어나버린 희수는 어떤 마음일까...


둘째를 보내고 집으로 달려오니 희수는 창문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생이 노란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모습을 보며 희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은 슬퍼 보였지만 여섯 살 희수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치료가 힘들지만 의사 선생님이 나을 거라고 했잖아요. 나는 엄마가 지켜주기만 하면 돼요."

라고 말하던 아들이었다.


달라진 건 유치원을 못 간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항암치료를 계속 받다 보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출이 어렵고 외출 시에는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지금이야 누구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지만 2014년 당시에는 아이가 마스크 쓰고 나가면 보는 사람마다

"어디가 아파? 감기 걸렸어?"

묻던 시절이었다. 순수했던 아이라 처음에는

"백혈병이라서요."

하고 당당히 대답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표정이 굳어 혀를 차며

"쯧쯧.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 식의 반응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고는 이내 입을 닫기 시작했다.


생활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면역력이 약해 음식으로 감염이 많이 된다고 하여 음식은 모두 깨끗한 재료로 바로 해 먹였다. 매끼 모든 반찬을 새로 해 먹였고 모든 식재료는 익혀먹였다. 아이가 좋아하던 김치는 볶아서만 먹을 수 있고 생야채나 과일도 보통은 먹을 수 없었다. 김치나 야채는 볶아주고 과일은 끓이든 데치든 어떻게든 먹일 수 있었는데 희수가 좋아하던 새우초밥은 먹일 수가 없었다. 새우를 사다가 데쳐서 해줘 봤지만 그 맛이 아니라고 하니 완치하고 먹자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식기를 같이 쓸 수도 없어 식사를 차려놓고 뷔페식으로 각자 떠먹었고, 아이 식기는 한번 더 소독하려고 식기소독기를 구입했다.

청소도 일이었다. 매일매일 청소하고 수시로 환기를 시켰고 화장실은 더 신경 써서 수시로 락스 청소를 했다. 아이 손이 닿는 것들은 소독 티슈로 다시 한 번씩 닦았다.


집안일들이야 일이 좀 많아진 것뿐이라 열심히 하면 될 일이었지만 때때로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코피라도 쏟아지면 병원엘 가야 하는지 미칠 노릇이었고 가뜩이나 항암치료를 하고 와서 기운 없이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 아이가

"엄마, 머리가 아파."

하기라도 하면 급히 열도 재보고 자라고 이불도 덮어줘 봤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결국에는 애를 들쳐업고 응급실로 뛰기도 여러 번 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몇 번 병원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다. 응급실에 가야 할 일과 가지 않아도 될 일에 구분이 생겨 되도록 병원에 가지 않는 쪽으로 했다. 병원이 가깝긴 했지만 응급실에 한번 가면 처치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 오히려 힘들어서 되도록 상비약을 받아두고 집에서 해결했다. 집에는 의사 선생님이 없으니 엄마가 의사 선생님까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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