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받고 처음 한 달의 관해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갔다고 해서 모든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중간 유지기간이라고 해서 5개월 정도 중간 정도 세기의 항암을 유지하고 그 후 두 달 정도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센 항암치료를 입원해서 진행한 후에야 비교적 가벼운 항암치료를 2년간 유지하는 유지치료기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총 2년 6개월의 기나긴 치료기간을 듣고 시작부터 숨이 턱 막혔지만 그러면 살 수 있다니까... 그러면 85프로는 산다니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으니 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 유지기간에는 매주 외래진료를 받고 약 처방이나 항암주사를 맞아야 한다. 3주에 한번 정도는 입원도 해야 했다. 입원해서 척수 항암을 하거나 MTX라는 항암주사를 맞았다. 첫 퇴원 후 다음 입원을 할 때만 해도 희수는 병원에 가기를 너무 싫어했다. 첫 입원기간 내내 매일 보는 의료진에게조차 입을 잘 열지 않던 아이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
두 번째 입원을 했을 때... 지난번에 희수를 예뻐해 주셨던 간호사 선생님이
"희수야~~ 보고 싶었어!!"
하고 달려와 아이를 폭 안아주었다. 희수도 싫지 않은지 씨익 웃더니 그 후로 종종
"유진쌤은 어디 갔지? 유진쌤 오늘 쉬는 날인가?"
하며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 방 담당이 아닌 날에도 살짝 들어와 놀아주고 가거나 밤 근무일 때면 몰래 아이의 차트에 '희수야 ♡' 흔적을 남기고 가곤 했고 다음날 그 메시지를 본 희수는 또 함박웃음을 짓고는 다음날 내내 복도를 돌며 선생님을 기다리곤 했다. 병원이 너무 싫던 희수는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에 병원 가는 것마저 즐기게 되었다.
면역력 문제로 예전처럼 유치원에 다닐 수도 없고 친구들을 맘껏 만날 수 도 없는 아이에게 병원 사람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은 물론이고 스무 살 된 형아랑도 놀고 심심할 때는 하다 하다 두 돌 쟁이 아가도 데리고 노는 경지에 이르렀다. 꼬마 아이들이 많은 날엔 병동 복도에 인적이 드문 시간을 틈타 서너 살 아이들을 쪼르르 몰고 나가 한 손에는 수액병이 달린 폴대를 끌고 운동삼아 복도를 돌곤 했는데 아이들만 입는 노란색 환의 탓인지 마치 병아리 새끼들 같았다.
희수와 하루 차이로 진단받았던 중학생 형과는 10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하게 잘 지냈다. 병명이 같다 보니 들어가는 약도 비슷해서 서로의 고통을 서로가 잘 이해하는 듯했다. 형이 잘 놀아줬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여튼 둘은 입원 중에는 한 침대에 앉아 깔깔대며 게임을 하고 종종 집에서 바로 해온 음식이나 과자를 나누어 먹었다. 외래진료 때면 시간을 맞추어 대기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입원기간이 엇갈리면 서로 그렇게 아쉬워할 수가 없었다.
병원 친구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는 병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 했다. 고립된 생활로 사회성이 걱정됐었는데 아이는 그 와중에도 형들에게 배운 만큼 동생들에게 베풀며 사회성을 키워나갔다.
병이 병인 만큼 대부분의 의료진들이나 다른 보호자들은 아이가 숨만 쉬어도 예뻐해 주었고 조금의 경쟁관계도 없다 보니 사랑을 듬뿍 받으며 투병생활을 했다. 병원에서 책을 읽으면 '천재'소리를 들을 만큼 예쁨을 받았고, 조물딱 조물딱 열쇠고리를 하나씩 만들어 선생님들께 드리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한쪽 가슴에 달고 다니니 아이에게 그만큼 보람된 일이 없었는지 틈만 나면
"선생님들 줘야지~"
하고 흥얼거리며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처음 병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병실 분위기에 깜짝 놀랐었다. 여섯 명 꽉 들어찬 병실은 보호자까지 합치면 총열두명이나 되는데 하나같이 밝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만큼 캠핑 온 듯 즐거운 분위기였다. 모두 소아암 투병 중인 아이들이라 머리는 빡빡이고 항암 중인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토그릇을 잡고 꽥꽥거리고 있는데 보호자인 엄마들은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때때로 떡볶이 같은 배달음식을 시켜 나눠먹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기가 찼다.
'애가 아파서 다들 정신줄을 놓은 건가...'
속으로 생각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었었다.
그런 것도 잠시... 그들이 생각이 없어서, 슬프지 않아서 그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아이가 이런 병에 걸린 아픔을 깊이 이해받을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도, 가족도 결국 서로 다른 상황에서는 마음 깊은 이해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커튼 밖으로 불러내는 손길에 슬쩍 끌려 나와 앉아 커피를 한잔 하기도 했고 곧 커튼을 활짝 열었다. 보호자 침상은 옆 베드와 딱 붙어있기 때문에 커튼을 열면 본의 아니게 서로의 숨소리까지 듣게 된다. 처음에는 옆 아이와 딱 붙어 앉아 있는 게 어색했지만 어느새 그냥 다 같은 가족처럼 느껴져 때때로 방귀까지 트는 사이가 되었다. 참 의아한 것은 소아암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너무나 순하고 착하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대부분 똘똘하기까지 했다. 우리끼리는
"이 병은 착한 아이들만 걸리는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을 할 정도로 다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