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생활중의 재미
입원이 길어지자 아이 나름 병원 생활중의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잠이 없어 일찌감치 일어나는 희수는 병실의 모범생이었다. 보통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은 패스하고 느지막이 점심부터 먹는 게 일반적인 입원생활인데 희수는 조식이 나오는 7시 반 전에 일어나 간호사실에 가서 키와 몸무게를 잰 후 병실로 돌아와 아침밥이 나오자마자 먹는 유일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병원밥이 맛없다고 투정을 해서 으레 외부음식을 사다 먹이곤 했지만 희수는 병원밥도 꽤나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양치와 가글까지 야무지게 하고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병원에 올 때면 케리어 가득 책과 공부할거리, 보드게임 등을 챙겨 와서 병원에서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고작 일곱 살인 아이지만 챙겨 온 문제집도 열심히 풀고 만들기에도 열심이었다. 클레이나 글라스데코를 열심히 만들어 병실 안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알록달록 클레이로 과일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어 침대 머리맡 조명 위에 전시하고 밤에 불을 켜면 미술관이 따로 없었다. 아이는 그 재미에 입원 때마다 없는 솜씨에도 색종이를 접고 클레이 작품을 만들었다. 항암 중에는 구토를 하기도 하고 고열이 올라 힘들어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잘 놀았다. '에너자이저'처럼 벌떡 일어나
"엄마, 보드게임해요."
하고는 몇 시간씩 앉아 루미큐브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그것도 지겨우면 퍼즐도 맞추고 과학상자도 만들었다가 로봇 조립도 했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가끔 태블릿으로 영화를 볼 때도 꼭 영어로 봐서 옆자리 이모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인적이 드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병동을 몇 바퀴씩 돌며 운동을 했다.
특히 9시 전후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시간 즈음이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교대시간인 때문이었다. 희수는 그 시간에 인폼을 기웃기웃 거리며 의사 선생님들께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아는 선생님을 만나면 반갑게 달려가 인사를 했고 그런 희수를 선생님들은 대부분 예뻐해 주셨다. 특히나 강화 치료기간 동안 아이를 맡아봐 주셨던 2,3년 차 선생님 두 분은 남다르게 아이를 예뻐했다. 3년 차였던 박규정 선생님은 항상 희수는 남다르게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하시며 인수인계 시간에 마주치면 아예 아이를 옆에 앉히고는
"얘도 나중에 의사 될 아이거든."
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소개하며 함께 인수인계를 하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그즈음부터 아이는 진지하게 의사 선생님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천샘이라고 불렀던 2년 차 선생님은 아이에게는 삼촌처럼, 나에게는 막냇동생처럼 살가웠다. 회진 때면
"희수야~"
하고 달려와 와락 끌어안고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어깨가 축 늘어져 들어와
"아~ 저 오늘 너무 힘들어요~"
하고 죽는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밉지 않았다. 처음 진단받고 한 달이야 뭣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었는데 이 생활도 7개월 정도 되다 보니 두 달의 병원생활은 꽤나 길고 지루했다. 사람 맘이 참 간사해서 처음에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했었는데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내 삶은 뭔가.'
하는 불평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창밖을 멍하니 보며 한숨만 쉴 정도로 우울해하다가, 해맑게 웃으며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보며 힘을 내기를 반복했다. 이 두 달만 지나가면 비교적 수월한 유지치료기간이 온다니까... 다시는 이렇게 힘든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 믿음 하나로 버텼다.
정말로 시간은 흘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두 달의 시간이 끝나갔다. 고된 항암도 끝났고 수치들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퇴원할 날이 다가올 무렵 갑자기 겁이 났다. 병원이라는 안전한 아지트 안에 숨어있다가 이제 바깥세상에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건강한 아이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쓰고 뭐든 조심하며 지내야 하는 앞으로의 2년이 갑자기 걱정되었다. 지겹기만 하던 병원생활이었는데 병동 선생님들을 앞으로 못 본다는 사실이 서운해지는 이중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 당황했다.
다지기를 마치고 퇴원하는 날...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꼭 안아주는 2년 차 선생님을 보며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런 엄마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다시피 집으로 향했다.
어쨌든 집이다 집!
이제 우리 네 식구 다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