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치료

병원생활중의 재미

by 이보연

표준 위험군이었던 아이의 중간 유지치료는 외래치료와 입원 치료의 반복이었다. 10살 넘는 형아들의 스케줄에 비하면 가벼운 축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항암치료는 항암치료 아닌가.. 아이는 항암주사를 맞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 약을 먹고 누워있어야 했고 척수 항암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눈물이 날 만큼 허리를 아파했다. 그렇다고 업고 응급실에 뛰어가는 것은 그만두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라는 것을 몇 개월 만에 터득했기 때문이다.


5개월의 중간 치료기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2015년 5월, 드디어 고되기로 소문난 '강화 치료' 스케줄에 들어갔다. 그동안 눌러놓았던 암세포를 꾹꾹 더 눌러준다고 하여 우리끼리는 '다지기'라고 부른다. 여러 가지 센 항암치료를 복합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통은 두 달 스케줄 중 많은 시간을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다들 처음부터 겁을 주었다.

치료를 위해 입원하고 다음날 척수 항암을 시작으로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척수 항암은 수면마취를 하고 진행된다. 가슴에 연결된 히크만으로 미다졸람과 케타민이라는 수면마취제가 들어가면 아이는 힘없이 잠이 들고, 그러면 잠든 아이를 옆으로 눕혀 새우등을 하게 한 후 척추뼈 사이에 바늘을 꽂아 척수액을 채취하고 그곳에 다시 그만큼의 MTX항암제를 밀어 넣는다.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약에 취해 파르르 떨리다 감기는 눈꺼풀을 보며 처치실 밖으로 나와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쭉 꽤나 고통스러웠다. 수면마취는 일반 마취와 다르게 살짝 잠든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는 그 순간의 고통을 느낀다. 기억을 못 할 뿐이다.


그날도 처치 도중

"엄마 엄마"

하며 아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황급히 뛰어나와 수면마취제를 더 가져오신다. 중간에 마취가 풀려버린 것. 다행히 아이는 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아이가 죽을 듯이 엄마를 불러대는데 엄마인 나는 그저 밖에서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지켜봐야 했다.

아이는 곧 다시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고 몇 분 만에 검사를 마치고 나와서 한참 잠이 들었다가 깨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몽사몽 귀여운 소리를 해댄다. 그제야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척수 항암을 하고 나면 머리나 허리가 아플 수 있어서 4시간 정도 베개도 베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도록 하지만 누워있는 아이조차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빈크리스틴이 투여되고 처음 맞는 아드리아마이신까지 투약한다. 보기에도 거북스러운 새 빨간색의 항암제. 이 빨간약은 줄을 타고 아이 몸속에 들어가 쉬까지 빨갛게 만들었다.


첫날 쏟아부은 항암제 부작용들을 회복해 내기도 전에 다음 항암제가 들어간다. 엘아스파 라고 불리는 엉덩이 근육주사인데 이틀 간격으로 여섯 번을 맞아야 한다. 큰 아이들도 침대를 두드리며 엉엉 울 정도로 아픈 주사라 어떻게든 덜 맞게 하고 싶어 한번만 맞으면 되지만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엄청 비싼 약을 맞기로 하고 희귀 의약품센터에 주문했다. 그 주사라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횟수라도 줄여주고 싶었다.


엉덩이 주사도 힘들지만 희수는 스테로이드제를 먹을 때가 제일 어려웠다. 스테로이드에 유난히 과민한 아이가 있다더니 그게 희수였다. 특히나 덱사를 먹을 때면 감정 변화가 너무 심해져 울다가 웃다가 결국 울면서 웃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교수님은

"희수가 바이올린 하는 아이라 그런가 보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애들이 감정 변화가 더 심한가 보네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그 후로도 스테로이드를 먹을 때면 줄곧 조울증 상태가 되거나 조급증에 시달렸다.


항암치료라는 것은 수술이나 다른 치료처럼 그 경과가 확실하게 예측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퇴원 결정이 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퇴원하려고 짐까지 다 쌌다가도 계획이 틀어져 며칠 더 잡히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병원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대부분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 마련이다.

퇴원 여부는 보통 그날 새벽에 한 피검사 수치를 보고 결정된다. 서울의 큰 병원들이야 워낙 환자가 많다 보니 면역력 기준으로 보는 anc가 0이어도 퇴원을 시키지만 아이가 다니는 병원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추세이기만 해도 입원시켜 지켜보곤 했다.


입원이 길어지자 아이 나름 병원 생활중의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잠이 없어 일찌감치 일어나는 희수는 병실의 모범생이었다. 보통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은 패스하고 느지막이 점심부터 먹는 게 일반적인 입원생활인데 희수는 조식이 나오는 7시 반 전에 일어나 간호사실에 가서 키와 몸무게를 잰 후 병실로 돌아와 아침밥이 나오자마자 먹는 유일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병원밥이 맛없다고 투정을 해서 으레 외부음식을 사다 먹이곤 했지만 희수는 병원밥도 꽤나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양치와 가글까지 야무지게 하고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병원에 올 때면 케리어 가득 책과 공부할거리, 보드게임 등을 챙겨 와서 병원에서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고작 일곱 살인 아이지만 챙겨 온 문제집도 열심히 풀고 만들기에도 열심이었다. 클레이나 글라스데코를 열심히 만들어 병실 안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알록달록 클레이로 과일도 만들고 동물도 만들어 침대 머리맡 조명 위에 전시하고 밤에 불을 켜면 미술관이 따로 없었다. 아이는 그 재미에 입원 때마다 없는 솜씨에도 색종이를 접고 클레이 작품을 만들었다. 항암 중에는 구토를 하기도 하고 고열이 올라 힘들어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잘 놀았다. '에너자이저'처럼 벌떡 일어나

"엄마, 보드게임해요."

하고는 몇 시간씩 앉아 루미큐브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그것도 지겨우면 퍼즐도 맞추고 과학상자도 만들었다가 로봇 조립도 했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가끔 태블릿으로 영화를 볼 때도 꼭 영어로 봐서 옆자리 이모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인적이 드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병동을 몇 바퀴씩 돌며 운동을 했다.

특히 9시 전후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시간 즈음이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교대시간인 때문이었다. 희수는 그 시간에 인폼을 기웃기웃 거리며 의사 선생님들께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아는 선생님을 만나면 반갑게 달려가 인사를 했고 그런 희수를 선생님들은 대부분 예뻐해 주셨다. 특히나 강화 치료기간 동안 아이를 맡아봐 주셨던 2,3년 차 선생님 두 분은 남다르게 아이를 예뻐했다. 3년 차였던 박규정 선생님은 항상 희수는 남다르게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하시며 인수인계 시간에 마주치면 아예 아이를 옆에 앉히고는

"얘도 나중에 의사 될 아이거든."

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소개하며 함께 인수인계를 하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그즈음부터 아이는 진지하게 의사 선생님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천샘이라고 불렀던 2년 차 선생님은 아이에게는 삼촌처럼, 나에게는 막냇동생처럼 살가웠다. 회진 때면

"희수야~"

하고 달려와 와락 끌어안고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어깨가 축 늘어져 들어와

"아~ 저 오늘 너무 힘들어요~"

하고 죽는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밉지 않았다. 처음 진단받고 한 달이야 뭣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었는데 이 생활도 7개월 정도 되다 보니 두 달의 병원생활은 꽤나 길고 지루했다. 사람 맘이 참 간사해서 처음에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했었는데 살 수 있을 것 같으니

'내 삶은 뭔가.'

하는 불평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창밖을 멍하니 보며 한숨만 쉴 정도로 우울해하다가, 해맑게 웃으며 내 앞에 있는 아이를 보며 힘을 내기를 반복했다. 이 두 달만 지나가면 비교적 수월한 유지치료기간이 온다니까... 다시는 이렇게 힘든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 믿음 하나로 버텼다.

정말로 시간은 흘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두 달의 시간이 끝나갔다. 고된 항암도 끝났고 수치들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퇴원할 날이 다가올 무렵 갑자기 겁이 났다. 병원이라는 안전한 아지트 안에 숨어있다가 이제 바깥세상에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건강한 아이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쓰고 뭐든 조심하며 지내야 하는 앞으로의 2년이 갑자기 걱정되었다. 지겹기만 하던 병원생활이었는데 병동 선생님들을 앞으로 못 본다는 사실이 서운해지는 이중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 당황했다.


다지기를 마치고 퇴원하는 날...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꼭 안아주는 2년 차 선생님을 보며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런 엄마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다시피 집으로 향했다.

어쨌든 집이다 집!

이제 우리 네 식구 다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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