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치료기간이 끝나고... 독한 항암으로 머리가 홀랑 빠져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퇴원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 걸음으로는 왕복 1시간 걸리는 공원까지 소풍을 다녀올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 내년이면 그렇게도 염원하던 학교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가기 앞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이올린 레슨이었다. 우연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꼼꼼하면서도 온유하신 성격이 아이의 성향과 딱 맞았다. 머리털 하나 없이 마스크까지 한 아이가 한 시간 내내 눈을 반짝이며 레슨을 받는 걸로도 모자라 다음 주면 숙제까지 완벽하게 해 오니 선생님은 매 시간 놀라며 점점 욕심을 내셨고 아이는 그 욕심에 줄곧 잘 따라갔다.
학교 가기 전 친구들을 좀 만나보라고 피아노 학원도 보냈다. 유치원도 못 다니고 1년 가까이 병원에만 있던 아이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한들 그저 행복해했다. 아픈 아이라고 모든 것을 차단하고 쉬게만 하는 것보다는 일반 아이들과 다름없이 뭐든 하게 하는 것이 어차피 나을 아이에게는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늘
"아파서 못하는 것은 없어."
얘기해 주었고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히크만(가슴관)을 아직 가지고 있어서 움직임에 제약이 있긴 했지만 배드민턴 같은 간단한 운동도 했고 쉬는 날이면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여행도 다녔다. 물놀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히크만 위에 덕지덕지 비닐을 붙여 물이 안 들어가게 하고 베란다가 다 젖도록 물놀이를 시켜줬다.
한창 치료할 때는 약기운에 가끔씩 우울해 보이던 아이가 몰라보게 밝아지고 자신감이 넘쳐 하고 싶은 것도 늘어만 갔다.
"한자시험 보고 싶어요. 수학시험도 알아봐 주세요. 영어시험은 없어요?"
아이의 공부 욕심은 끝이 없었다. 이미 학습적인 모든 부분은 준비가 되어있던 아이이다 보니 면역력 문제를 제외하고는 학교생활에 있어 아무 걱정이 없었다.
어른이라도 된 듯 남색의 네모반듯한 가방과 같은 색의 필통, 그 안에도 단색 위주의 연필과 지우개를 챙겨 놓고는 입학 한참 전부터 할머니가 입학식 날 입으라고 사주신 코트를 입었다 벗었다 설레어하던 아이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학교에 입학했고 역시나 학교생활을 너무도 잘하였다. 2학년 담임선생님의
"어머님, 희수 너무 잘 키우셨어요."
하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혼자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유일한 걱정이었는데 때때로 마스크로 트집을 잡는 아이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희수는 크게 개의치 않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주중에 한 번씩은 꼭 병원에 가야 했는데 그날마저도 학교를 꼭 가겠다고 해서 학교를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하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신비주의처럼 점심시간에만 마스크를 벗으면 여자아이들이 귀엽다고 난리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너무도 잘했고 그동안 못 한 것들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여러 가지에 욕심내며 날개 달린 듯 날아올랐다. 특히나 바이올린은 절대음감까지 타고난 데다가 워낙에 열심히 하다 보니 취미생 아이들이 나가는 콩쿠르에서는 단연 돋보였고 2학년 올라가면서는 전공생들이 나가는 메이저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척수 항암을 하고 온날,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엎드려 있다가 연습하다를 반복할 정도로 아이는 독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과한 날은 7시간씩 연습을 해서 온 가족이 뜯어말리기도 했다. 결국 그 독한 근성으로 조성진을 배출한 걸로 유명한 메이저대회인 음악춘추 예선을 통과했다.
물론 2주 후 본선 대회를 마치고... 아이와 끌어안고 울었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속상해서...
아프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잘하고 있을까... 3등 안에 들지 못해 아이는 잠시 위축되었지만 사실 등수는 중요치 않았다. 아픈 와중에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아이가 기특하고, 다 나은 후 아이의 미래가 기대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