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운 말...

재발 이라고요?

by 이보연

진단받을 때 여섯 살이었던 아이는 아홉 살이 되었다. 가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흘러 어느덧 진단받은지 2년 8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매주 병원에 갈 때마다 담당교수님은

"아주 잘하고 있어. 수치도 이렇게 모범적으로 잘 유지될 수가 없어요."

하시고는 병에 관한 얘기보다 근황에 관한 얘기를 더 오래 나누곤 했다.


치료종결을 3개월 앞두고 정기검진 차 동네 안과에 갔을때였다. 따로 병명을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냥 몇 가지 검사를 추가해서 해봤단다. 그런데 안저검사에서 시신경 부종이 보인다고 했다.

"별건 아니고요. 보통 아이들 같으면 먹는 스테로이드 처방하고 몇 주 먹으면 될 일인데 병력이 있다고 하니 본원에 가서 확인을 하고 처방받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며 친절히 진료기록까지 뽑아주셨다. 별것 아니라고는 했지만 혹시 모르는 불안감에 다음날 바로 교수님을 찾아갔다. 곧바로 안과검진하고 입원해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했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먹는 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희수는 입원해서 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고 3일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 날이 좋아 근처 공원 산책도 자주 하고 여름에 있을 콩쿠르 준비로 바빴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는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안과검진을 하고 급하게 MRI도 찍었다. 교수님 표정이 좋지 않았다. MRI 가판독 중 '재발'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보자마자

"재발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럴 리가 없는데..."

하시며 영상판독 결과가 빨리 나오도록 뛰어가 푸시해주시고 안과, 신경과에서 적극 협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재발이 아닙니다."

라는 판독 결과를 받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백방으로 뛰시더니 지난번에 시신경 부종 때 다 치료되지 않고 남아있던 문제가 다시 염증을 일으킨 것으로 일단 잠정 결론지어 오셨고 혹시 모를 원인이 있을까봐 병원 내에서 검사가 불가능한 혈액검사까지 타 병원에 의뢰해 주셨다. 대학병원에서 이렇게 일사천리로 하루 만에 일이 처리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정말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병실에서 묵묵히 공부하고 있는 희수를 보더니

"쟤는 그 와중에 공부하고 있어요! 공부 좀 작작하라고 해요!"

하며 진심 버럭 하시는데 그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다. 그렇게 또다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력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안심했다. 기다리던 치료종결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 후인 2017년 7월 13일..

엉덩이 주사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치료를 종결했다. 이제 그간 움추렸던 만큼 날갯짓만 하면 될 것 같았다.


1학기를 마무리하며 학교에서 반년 동안 본 시험지들을 가져왔다. 역시나 대부분 백점. 주관식이며 서술형까지 어찌나 야무지게 잘 썼는지 너무나 기특했다.

수학경시대회 상장도 날아왔다. 아픈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결과를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뇌가 희끗희끗하게 변할 만큼 독한 항암을 견뎌내고 그 머리로 공부를 한다는 것... 척수를 바늘로 찔러대고 돌아와서도 반듯하게 서서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는 것... 어른일지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희수는 지금처럼만 살아간다면 아픈 아이들의 희망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러한 기대와 확신도 며칠 가지 못했다. 아빠와 자전거 타고 놀고 온 아들이 그 사이 내가 깔아놓은 '매일 쓰던' 이불을 보고는 처음 보는 것인듯한 반응을 보였다. 진한 핑크색 이불이었는데 보라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급히 휴대폰 불빛을 눈에 비추어보니 동공 반응도 이상했다. 몇 달간 두 번이나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또... 불안함이 몰려왔다. 다음날 바로 병원을 찾았고 바로 입원하여 골수 척수 검사 후 MRI를 찍었다.

늦은 시간... 아이를 MRI실에 넣고 나오자마자 마주한 3년 차 선생님...

한밤중에 거기까지 찾아온 것은 보통일이 아닐 거라는 직감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역시나..


척수에서 블라스트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재발. 다발성 경화증까지 걱정하고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재발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결과였다. 곧 교수님도 달려오셨고 아직 골수까지 퍼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그에 맞는 항암 스케줄로 다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번에는 85%였다면 이제 60% 정도 되는 겁니다. 대부분 고용량 항암이고 2년이나 해야 돼서 힘들겠지만 항암만으로도 되는 거니까 다시 해봅시다."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말로 위로해 주셨지만 3년 가까이 치료했는데 또다시 원점이라니 긴 시간 견딘 아이가 너무나 불쌍하고 그 시간들이 너무나 억울해 MRI실 앞 차가운 적막이 흐르는 어두운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우리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두번 씩이나 이런 고난을 주시냐고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해맑게 수많은 꿈을 꾸고 있던 아이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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