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날개가 꺾이지 않기를...

by 이보연

재진단 받던 날...

아이가 MRI를 찍는 동안 한참 울고 병실에 올라와서 조금 진정한 후 입을 열었다.

"희수야~ 백혈병 세포가 다시 생겼대. 그래서... 처음부터 치료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엉엉 울거나 멘붕이 올걸 예상했는데

"아 그래요? 엄마 아까 그래서 운거였어요?"

하고는 자기는 괜찮다는 아홉 살.

"힘든 치료 다 끝났는데 또 해야 한다는 게 화나고 속상하지 않아?"

물으니

"좀 그렇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좀 있으면 머리도 빠지겠지만 어차피 다시 나는데요. 뭐."

하는 아이.

"너만 한 애들은 다 주사맞기 싫다고 울고불고 소독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하는데 너도 안하고 싶을 때 있지 않아?"

물으면

"어차피 해야 되는 건데 얼른 해버리는게 낫지 뭘 시간끌어요.그리고 소독할때 시원하기도 해요."

라며 성인군자같은 소리를 해댄다.

아 정말 너란 아이... 아이가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보니 어른인 내가 당최 흔들리고 힘들어 할 수가 없다.

'대단한 아이... 너 때문에 내가 정신 차리고 산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이리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지...'


그런데 재발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었다. 아이의 시력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쪽 눈의 시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전처럼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쓰면 돌아오겠지만 항암치료와 병행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신 치료 스케줄에 있는 스테로이드의 용량을 올려 쓰기로 했다.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음에도 아이만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보이는 다른 쪽 눈으로 평온하게 공부를 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야 아이의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고 다행이었다.


"다음주가 콩쿨인데 그것까지만 나가면 안되나요?"

아이가 재발 판정을 받던 날 교수님께 물었던 질문 중 하나였다.

참 철없는 엄마같이 느껴졌지만, 그날을 위해 몇 달을 준비한 아이에게 무대에 서는 기쁨까지는 느끼게 해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무대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컸다. 교수님은 그런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듯 콩쿨은 허락했지만 항암은 미룰 수 없으니 치료는 진행하고 콩쿨전날 외출하여 콩쿨을 치르고 돌아오는 걸로 말씀하셨고 그러기로 했다.


작지 않은 무대. 전공을 하는 아이들이 꽤 나오는 대회를 아이는 1주일 동안 독하디 독한 항암주사를 양쪽 팔에 찔러 넣고 대회 전날 골수, 척수 검사까지 해서 아픈 허리로 바이올린을 들고 있을 수는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태로 무대에 섰다. 15만원짜리 연습용 악기는 장마철에 1주일이나 관리를 못했더니 먹먹한 소리가 났지만 아이는 그 컨디션으로, 그 악기로 너무나 훌륭한 연주를 했다. 아이의 연주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악기라도 좋은 걸로 사줄걸...'


희수는 대회에서 4등을 했다. 우리에게는 1등과도 같은 4등이었다. 그렇게 울며 웃으며 4등 상장을 들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전에 예선 참가를 했던 메이저대회에서도 본선 진출을 했다는 연락이 왔다. 참가비가 없어서 어마어마한 수의 아이들이 참가하고 매년 대단한 아이들이 상을 받는 대회에 본선 진출한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는데 아이는 2주 후의 대회는 참가할 수 없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왜 또 우리지?

몇 달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그 와중에도 착한 맘으로 살았는데... 이제 하늘이 맑아 화가 나고 이웃집 웃음소리에 화가 나고 맛있게 밥 먹는 사람만 봐도 화가 났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주신대."

그 당시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다.

'저를 잘못 보셨어요. 백혈병 진단받았을 때 딱 거기까지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니에요. 제발 그만 여기서 멈춰주세요.'

그날 밤새 울부짖었다.

동시에 오기가 생겼다.

'두고보세요. 우리가 보란듯이 이겨낼테니...'


이전 11화믿기 어려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