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한 달을 입원해 있어야 하는 '관해'스케줄이었지만 두번째라 더 힘들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서 자주 집에 왔다. 집에 있어도 공부 생각뿐인 아이는 동생이 학교 갈 준비를 할 동안 머리맡에 한가득 공부할 것들을 쌓아놓고
"어차피 학교 공부는 쉬우니까 이참에 선행이나 해놓지 뭐."
하며 씩씩한척 했지만 이내 약기운에 취해 잠이 들었다. 어느날에는
"엄마 나 의사 선생님이 좀 많이 되고 싶어요. 골수검사 안 아프게 하는 의사 선생님이 될 거예요."
했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해주었다.
그런데 일단 얼른 낫자.
다시 병원. 항암치료를 받으러 입원을 했는데 의외의 것이 발목을 잡았다. 집에 있을 적 밖에서 살짝 넘어져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상처가 났는데 이 상처가 덧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뾰루지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벌겋게 커져갔다. 그래 봐야 우리 눈에는 뾰루지일 뿐이었는데 의료진들은 응급상황이라고 난리였다. 그동안 스테로이드를 많이 쓴 탓에 아이의 면역 체계가 무너졌고 넘어졌을 때 무언가 균이 들어갔을 거라고, 지금 상태는 패혈증이 의심된다며 중환자실에 보내 모니터링하자고 했다. 중환자실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아이 혼자 얼마나 힘들지가 그려져서 안된다고 그 모니터링 내가 여기서 하겠다고 우겨서 병실에 남아 피 마르는 며칠을 보냈다.
무릎 위 상처는 점점 커져 어른 손바닥 크기만큼 새카맣게 변해갔다. 피부가 괴사 하는 거라고 했다. 게다가 몸은 점점 부어가고 점점 못 움직였다. 키가 135cm인 아이는 하루 만에 2킬로가 더 늘어 39킬로가 넘었다.
온몸은 터질 듯이 붓고 있고 원인균은 나오지 않고 이제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교수님은 나를 밖으로 불러내시고는 스테로이드 때문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만약 잦은 척수 항암으로 뇌에 문제가 생겨서 못 걷는 거라면 문제가 크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계속 못 걸을 수도 있다셨다.
게다가 이 중요한 시기에 항암을 마냥 멈추고 있는 것도 큰 문제였다. 무서웠다.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준다며.. 이건 이미 우리 한계치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퉁퉁 부어 제 발도 스스로 못 드는 아이의 차가운 발을 풀어보겠다고 주무르고 주무르다가 따뜻한 물에 족욕을 시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주 극적인 드라마 몇 편을 순식간에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
원인균이 밝혀졌다. 녹농균.
패혈증을 일으키는 균 중에서도 악질이었다. 제일 센 항생제, 제일 센 진균제, 패혈증 약에 면역글로불린, 그라신, 알부민... 이것저것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양쪽 라인으로 투여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3킬로 가까이 몸무게가 줄었고 살살 걷기 시작했다. 컨디션도 많이 좋아져서 웃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돌쟁이도 아닌 아홉 살 아이가 몇 발짝 떼는 게 이렇게 뭉클한 일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더랬다.
뭣모르고 시작한 첫 치료와 달리 두 번째는 정말 맘이 힘들었다. 엄마가 힘내고 밝아져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하루에도 열 번씩 걱정되고 먹먹해졌다.
아이가 회복되자 교수님은 아이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녹농균에 감염되고 살아온 애를 본 적이 없어. 고마워."
하며 연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고비를 넘겼건 어쨌건 스케줄은 계속 진행되어야 했다. 고용량 시타라빈.
표준치료 때는 60mg 썼던 것을 이번에는 단위부터 다르게 3.5G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 시타라빈을 이만큼 쓰는 아이를 본적이 없어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어떤 아이가 이 약을 쓰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될 정도로 초주검이 되더니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글을 발견했다. 꼭 써야 하는 약이라는데 너무나 두려웠다.
24시간 들어가야 하는 약인데 내가 잠든 동안 아이에게 위급상황이 올까봐 아이 침대에 올라가 밤새 아이의 손과 발을 잡고 앉아 있었다. 아이의 숨이 붙어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아이는 항암 후 쭉 두통을 호소했지만 워낙 두통이 오기로 유명한 약이기도 해서 추석 연휴는 집에서 보내자고 퇴원을 했다. 집에 있는 동안에도 자주 머리가 아팠다. 점점 심해지나 싶더니 다음날은 타이레놀로 조절이 안될 정도였고 그 다음날까지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결국 응급실로 달렸다. 다행히 응급실 당직 선생님이 우리 2년 차 선생님이었고 또 다행히 무슨촉으로 교수님이 그 타이밍에 희수 걱정에 전화를 주셔서 빠른 판단으로 ct를 바로 찍어볼 수 있었다. 병실에 올라와있는데 갑자기 분주해지는 병동 분위기다 심상치 않았다. ct에서 뇌출혈이 발견되어 바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은 많은 수술이 미뤄지는 연휴인데 다행히도 소아 뇌수술로 유명한 교수님께서 바로 수술을 해줄 수 있다셨다. 뇌수술 치고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뇌에 구멍을 내 피를 빼는 수술이라는 설명 자체가 무서웠다. 아이와 몇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고 수술이 끝나도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수술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술할 수 있는 수치를 만드느라 급하게 노란 피, 혈장, 백혈구까지 연달아 맞고 전신마취를 하고 머리에 관을 꽂아 피를 빼는 수술을 했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신경외과 교수님은 뇌의 중심이 밀려 비뚤어질 만큼, 몇 시간 만에 100밀리가 넘는 피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태였는데도 두통 말고는 큰 증상 없이 지냈던 게 신기할 뿐이라고 이 정도라면 언제든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다행히 또 아주 다행히 그 와중에 뇌 안쪽 출혈이 아니어서 작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했던 거라고 했다. 그 와중에 '다행히'라는 말이 나온다는 사실이 어이없고 어이없었다.
아이는 금세 안정을 찾았고 수술 경과가 좋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일반병실로 옮기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공부를 하고 책을 보고... 운동을 하면 피가 빨리 빠진다는 말에 병동 복도를 한 시간 넘게 도는 아이가 이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저는 힘든 치료라도 괜찮아요. 엄마가 옆에서 지켜주기만 하면 돼요."
말하고는 흥얼흥얼 거리며 할 일을 하는 이 아이의 곁을 끝까지 꼭 지켜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